예술원 회원 유안진 서울대 명예교수
팔순 맞아 시집 ‘터무니’ 펴내
박목월 추천으로 1965년 등단
“터무니 있건 없건 계속 쓰겠다”
/박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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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 있건 없건 등단 56년에, 겨우 시인 지망생이 되는 듯한데, 시집(詩集) 공해 보태는 짓만 또 한다.’
예술원 회원인 유안진(80)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시집 ‘터무니’(서정시학)를 발간하며 이렇게 서문을 썼다. 팔순에 들어 펴낸 3년 만의 시집. 교육자로 살면서도 1965년 등단해 50여년간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공해짓'을 또다시 감행했다. “인생에도 공부해야 할 때, 열심히 일할 때가 있듯이 시도 마찬가지더군요. 이때 아니면 쓰지 못할 시가 있었습니다.”
터무니없이 나이 여든이 됐다고 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성경 구절도 있지만,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세월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지금부터는 잘못한 걸 고쳐 사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잘못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너무 많더군요.”
특히 2014년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짐작게 하는 시가 많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구두를 현관에 그대로 놓아두기도 하고(남자신발),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이 아니면 쉬이 잠들지 못한다(불침번). 사별한 고통으로 체중이 7㎏ 빠졌다고 했다. “음담패설부터 고담준론까지 나눌 상대는 부부 관계밖에 없습디다. 어떤 죽마고우도 그렇게 지내지 못해요.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나니 한없이 미안한 겁니다. 내 일을 한다고 그에게 너무 소홀했구나.”
시집은 가족과 종교, 인생을 돌아본다. 살아가는 고통을 기록하고 지나간 잘못을 뉘우친다. 유씨는 “시를 쓰며 ‘동고동락(同苦同樂)’이란 말에서 왜 ‘동고’란 말이 먼저인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고통을 이겨내야 즐거움으로 건너갑니다. 지옥을 안 살고 어찌 극락에 가겠습니까.”
대학 강단에서 아동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뒤로 신앙 생활과 시 쓰기가 일과의 대부분이 됐다. 낡고 해진 성경을 읽거나 시를 종이에 끄적인다. 중학생 때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만난 뒤로 시인을 꿈꿨다. 1960년대에 시인이 되려면 선배 시인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대학 2학년 때 찾아간 시인 박목월은 2년이 지나서야 그를 시인으로 추천했다. 시를 받아 든 박목월은 늘 이렇게 말하며 추천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네가 시를 쓸 건가, 안 쓸 건가. 살다가 어렵다고 시를 안 쓰면 자네를 추천한 나는 뭐가 되는가?” 유씨는 “목월 선생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쓴다”고 했다. “시인은 직업이 아닙니다. 다시 시인 지망생처럼 내가 쓸 수 있는 시를 썼습니다. 터무니가 있건 없건.”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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