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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커피의 쓴맛을 대하는 자세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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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수확해야 단맛이 감도는 고급스러운 쓴맛을 지닌 좋은 커피가 될 수 있다


커피에 쓴맛은 계륵(鷄肋)과 같다. 없으면 달고 시기만 한 주스 취급을 받고, 많다 싶으면 품질이 좋지 않다는 비난을 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커피 역사에서 쓴맛은 커피를 문화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게 한 일등공신이다.

1930년대 다방 문화가 한창 꽃피울 때 녹즙처럼 진한 커피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마실 줄 알아야 모던걸·모던보이로 대접받았다. 시쳇말로 ‘외국물을 좀 마셨다’고 하면 쓰디쓴 커피를 꾹 참아낼 줄 알아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고로 커피라고 하면 써야 제맛’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형성됐으며, 쓴맛을 고독처럼 즐기는 게 ‘지식인의 미덕’인 양 통했다.

커피는 높은 지위 또는 지식인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됐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에서 커피문화가 형성된 뒤 차차 대중에게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1860년 철종 때 조선에서 활동한 베르뇌 신부가 인편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커피 생두 45㎏을 들여왔음을 보여주는 서신이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친모가 프랑스 신부를 운현궁으로 모셔 미사를 드렸다는 전언과 후일 고종이 경복궁을 찾은 외교관들에게 커피를 제공했다는 기록은 당시 커피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커피는 왕실이나 지식인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급문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항간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고약한 쓴맛으로 인해 마시기 쉽지 않은 점은 커피에 되레 범접하기 힘든 고상함을 부여했다.

커피의 향미를 묘사하는 전문가들은 쓴맛에 대한 관능적 느낌을 묘사할 때 신중하다. 일반적으로 쓰면 쓰고 달면 달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고급 커피에서 감지되는 쓴맛에는 대체로 ‘부드러운’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쓰긴 하지만 마시기에 나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

커피 향미를 표현할 때 번역하면 뉘앙스가 달라지거나 의미가 왜곡될 수 있어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비터스윗(bittersweet)’이다. 회화에서 ‘시원섭섭하다’로 활용되는 이 표현은 고급스러운 쓴맛을 나타내기도 한다. 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쓴맛을 애써 참고 먹어내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라는 말이 있다. 학습 덕분이다.

커피에서 쓴맛이 두드러지면 품질이 좋지 않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몸에 유익한 항산화물질들이 쓴맛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사실 좋은 커피는 쓴맛을 피해갈 수 없다. 쓴맛은 주변을 감싸는 단맛이 있어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단맛이 없는 쓴맛은 지독한 자극일 뿐이다. 이를 참고 마시는 것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커피를 마실 때 쓴맛만 감지되면 뱉어야 한다. 그러나 단맛이 뒤를 받쳐주면서 다크초콜릿이나 자몽이 떠오른다면 삼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터스윗한 커피’이다. 독을 다스리는 자가 명의(名醫)이듯, 쓴맛을 대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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