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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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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63%… ‘임기 말' 獨 메르켈 총리 인기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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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초의 여성, 동독 출신, 이공계 전공자 총리....G7 정상회의 역대 최다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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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 빗댄 메르켈 독일 총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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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첫날이었던 지난 1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다음 달 미국으로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백악관에서 맞이할 첫 번째 유럽 지도자로 메르켈 총리를 고른 것이다. G7 정상회의 주최자였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유럽의 새로운 리더를 자처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제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오는 9월 말 치르는 총선 직후 16년을 이어온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일찌감치 예고해왔다. 퇴임을 불과 3개월쯤 남긴 메르켈이 백악관 초대장을 받자 독일 내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그가 누리는 높은 인기를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르켈이 예정대로 올해 가을 물러나면 헬무트 콜(1982~1998년 재임)과 함께 역대 최장수 독일 총리가 된다. 16년간 메르켈은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 각 4명, 영국 총리 5명과 맞상대로 지냈다. G7 정상회의에 역대로 가장 많은 15번 참석한 기록은 쉽게 깨지기 어렵다. 둘째로 많이 참석한 이가 12번 참석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다.

장기 집권 중이지만 메르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지난주 공영방송 ARD이 정치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메르켈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63%로서 차기 총리 후보로 각 당에서 지명된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트(32%),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42%) 등을 크게 앞섰다. 독일에서는 메르켈을 두고 ‘왜 벌써 물러나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독일 청소년들은 그의 퇴임을 앞두고 인터넷에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 글을 띄우기도 한다. 유아기부터 총리는 메르켈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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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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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강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15년 난민 유입 사태를 해결했다. 독일 내부에서는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는 말을 들었고, 국제사회에서는 EU(유럽연합)의 단합을 이끌어 ‘유럽의 여제(女帝)’로 불렸다. 골치 아픈 현안이 있을 때 원칙을 중시하고 대화와 포용을 보여줬다. 쇼맨십을 지양하고 말수가 적어 무미건조하다는 말도 종종 듣지만 그렇기 때문에 솔직하고 믿을 수 있다는 호평도 나온다.

바이든이 퇴임을 앞둔 메르켈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도 메르켈의 사람 됨됨이에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메르켈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기 8년을 함께하며 호흡이 잘 맞았고, 당시 바이든은 부통령이었다. 오바마는 작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메르켈을 가리켜 “신뢰할 수 있고 지적으로 정확한 사람”이라고 했다.

메르켈은 독일 경제의 순항을 이끌며 준수한 성적표를 남겼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독일 실업률은 3%로서 사실상 완전 고용을 달성했다. 2019년 기준 독일의 경제 규모(GDP) 대비 국가 부채는 59%다. 프랑스(98%)·영국(85%)보다 눈에 띄게 낮다. 재정이 건실한 덕분에 독일은 코로나 사태 충격이 유럽에서는 가장 적은 편이었다. 의료 인프라를 사전에 충분히 구축해뒀고, 팬데믹에 맞서 과감하게 재정을 풀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메르켈은 ‘과학자 총리’로서 면모가 돋보였다. 양자역학을 전공한 물리학 박사인 메르켈은 G7 정상 가운데 유일한 이공계 출신이며, 독일에서도 첫 이공계 출신 총리다. 그는 코로나 방역 상황을 설명할 때 감염자 한 명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다른 환자 숫자를 뜻하는 감염재생산지수를 끌어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전문가를 믿고 따르라는 그의 메시지에 힘이 실렸다. 독일 기업 바이오엔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 예방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도 메르켈의 업적으로 통한다.

메르켈의 인생 여정이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그는 ‘동독 출신 여성’이라는 약점을 이겨냈다. 1991년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정치 신인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하자 여성 배려용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스스로 성장했다.

메르켈은 기민당 사무총장이던 1999년 자신을 키워준 콜 전 총리가 정치 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우리는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이후 원칙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굳혔다. 2000년 제1야당이던 기민당 대표로 선출된 메르켈은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이후 총선에서 4연승 했다. 토르스텐 파스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이미 퇴임을 예고했기 때문에 그가 방역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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