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임무 맡을 수도"…교황 메신저·특사 가능성에 주목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 2017년 1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는 모습. [천주교대전교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대전교구장 유흥식(70) 대주교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계기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면서 유 대주교의 향후 역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발표된 유 대주교의 교황청 장관 임명은 한국 정부 및 천주교계 사이에 교황 방북 성사를 위한 물밑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라 더욱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 한국 교계 안팎에서는 유 대주교 임명 배경과 교황의 방북 사안을 연결 짓는 시각이 적지 않다.
과거 교계 차원의 대북 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북한을 잘 아는 유 대주교에게 방북 프로젝트의 가교 역할을 맡기려는 교황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 아니냐는 관측이다.
교황청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1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유 대주교의 역할이 성직자성 장관직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의 성향과 활동 범위 등을 고려하면 일상적인 부처 업무 외에 특별한 임무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교황의 방북 추진 과정에서 메신저 또는 특사 역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유흥식 대주교. 2014.11.17. [천주교대전교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한국 교구장보다는 교황청 장관 신분으로 교황과 북한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고 북한 입장에서도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는 얘기다.
로마와 바티칸에서 활동하는 한 사제는 "교황 방북 추진이 본격화하면 유 대주교가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청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이탈리아 언론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11일 유 대주교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바티칸에 입성하는 한국 성직자, 북한 방문을 꿈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유 대주교가 지난 4월 교황으로부터 직접 장관직을 제안받을 당시 관련 사안에 대한 언급이나 암시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 스스로 교황 방북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12일 교황청 장관 임명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는 "교황님의 방북을 주선하는 역할이 맡겨진다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한 문 대통령 |
임명 배경을 떠나 앞으로 유 대주교가 교황 방북을 포함한 교황청 내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감과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점에 큰 이견은 없다. 교황의 신임 아래 유 대주교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평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유 대주교의 교황청 장관 임명을 기점으로 교황 방북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하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교황 방북을 통해 꽉 막힌 남북·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청와대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일정의 하나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찾은 자리에서 "아직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그날이 곧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한 와중에 윌턴 그레고리(74) 추기경을 만나기도 했다. 교황의 방북을 위해 힘써달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둘 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14일 한 방송에서 '교황의 북한 방문이 추진 중이냐'는 진행자 질문에 "이번에 교황청 장관직에 선임된 대전교구장 유흥식 대주교가 교황의 방북 모멘텀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굉장히 희망적인 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 유흥식 대주교 만난 박수현 수석 |
한편,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일부 시각에 관해 교계 인사들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주된 발탁 배경은 아닐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성직자성은 전 세계 사제와 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고 신학교를 관리·감독하는 등의 역할을 하지만,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 국가 등 주요 선교 지역의 경우 인류복음화성이 해당 업무를 맡고 있다.
성직자성의 업무 성격만 보면 중국과 접촉면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실제 중국 문제에는 교황청 관료조직의 심장부인 국무원과 인류복음화성의 역할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앞서 2019년 12월 인류복음화성 장관에 필리핀 출신 루이스 안토니오 고킴 타글레(64) 추기경이 임명됐을 때도 중국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회자한 바 있다. 모친이 중국인인 타글레 추기경은 교황청 내 거의 유일무이한 '지중파'(知中派)로 꼽힌다.
다만, 한편에서는 중국 주교들과 두루 친분이 두터운 유 대주교의 교황청 입성으로 중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이를 토대로 교황청의 대중 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전망 또는 기대도 많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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