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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고시원서 자가격리? 차라리 확진돼 병원 가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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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 : 아무도 울지 않은 코로나 고독사]

‘고독’이 모여사는 고시원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땠을 거 같아요? 지옥이 따로 없지.”

점잖고 예의바른 강정식(가명·79) 할아버지. 주위에 친절한 분이었지만 1월 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 그가 머물던 서울 동대문구 A고시원은 쑥대밭이 됐다.

“당신들이라면 어떻겠소. 기침만 해도 다 들리는 방에서 사람이 죽었어. 근데 코로나19래. 당장 집단감염까지 같이 퍼졌지. 꼼짝없이 모두 밀접접촉자야. 어쩌면 차라리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에 가는 게 더 나았을지 몰라. 자가 격리하라 해서 1평 남짓한 방에서 2주 동안 갇혀 있었어. 누군가는 죽어나갔고, 누구는 실려나간 곳에서. 잠인들 제대로 잤겠어.”

숨진 강 씨가 머물던 방은 4층 39호실. 이 고시원에선 12일까지 강 씨를 포함해 6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4층에서 지내던 사람은 모두 24명. 4명 중 1명꼴로 감염됐다. 다행인지 3층에서 생활하던 23명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 번이라도 고시원에 머물러 본 사람은 안다. 거긴 사람이 가득한 무인도다. 촘촘히 들어선 방마다 누군가는 살고 있다. 온갖 소리가 다 들려온다. 조용한 밤엔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묘하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강 씨처럼 다가서도 금방 누군가를 사귀기 쉽지 않다.

동대문보건소에 따르면 A고시원의 첫 확진자는 강 씨가 아니다. 강 씨가 발견되기 전날인 10일 35호실 남성이 먼저 양성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는 원장에게 즉각 확진자 발생을 알리고 11일부터 전수 검사를 진행했다. 옆방 34호 등에서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강 씨가 일찍 발견된 건 어쩌면 코로나19 전수 검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하게 지냈다지만 고시원은 서로 행방을 묻지 않는다. 며칠씩 방을 비워도 그러려니 한다. 원장이 11일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은 언제 알려졌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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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팀이 찾아간 A고시원 4층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공동생활시설, 거주 공간, 계단 구역까지 포함해 총 154m²(약 46평) 크기. 하지만 각방은 1평 남짓, 복도는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결정적으로 환기시설은 공동 주방과 화장실 외엔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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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4층에 거주하는 24명은 화장실과 주방, 세탁실을 다 함께 썼다. ‘금연 구역’이란 안내문이 붙었지만 모두가 담배를 피웠던 계단도 밀접 접촉 공간이었다. 강 씨가 숨지고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도, 고시원 계단에선 여전히 갈 때마다 마스크를 내린 채 흡연하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서울 지역의 다른 고시원에서 10명 이상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A고시원은 비교적 확진자가 적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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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고시원 집단감염은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동대문구는 강 씨가 숨진 1월에만 고시원 4곳에서 확진자가 34명이나 나왔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공용 공간을 사용하는 고시원 거주자들에겐 ‘집’ ‘안식처’여야 할 고시원이 오히려 코로나19에 감염되기 더 위험한 공간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A고시원의 집단감염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간 이들은 모두 40여 명. 밥도 먹을 수 없는 좁은 방에서 2주를 혼자 버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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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다들 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공용 주방, 화장실 오가면서 주민들과 접촉이 생길 수밖에 없죠. 또 생활용품 사러 편의점 가고, 바깥 식당에 가서 먹을 거 사오고 그랬어요. 감옥살이나 다름없는데 누가 2주를 버팁니까.”

방역당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서울에 있는 한 보건소 관계자는 “고시원 등 주거취약계층 자가 격리 대상자는 24시간 감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시설관리인 등에게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하는 것 외엔 대응 방법이 없다시피 하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강 씨가 살았던 A고시원은 거주자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어 일용직을 뛰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2주 동안 꼼짝없이 묶여 있는 바람에 돈 나올 구멍이 없었다.

한 거주자는 “격리가 끝난 뒤에도 한참 자리를 비운 탓에 일감 찾기가 더 어려워 꽤 애를 먹었다”며 “기초자치단체에서 자가 격리 대상에게 30만 원인가 지원금을 줬지만 고시원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건 없었다”고 토로했다.

::히어로콘텐츠팀::
▽총괄 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기사 취재: 이윤태 김윤이 이기욱 기자
▽사진 취재: 송은석 기자
▽그래픽·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이지훈 기자
▽사이트 제작: 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개발 최경선
‘고별-아무도 울지 않은 코로나 죽음’ 디지털페이지(original.donga.com/2021/covid-death2)에서 더 많은 영상과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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