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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매경이코노미스트] 구호만으로 ESG 경영을 실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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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종영 교수가 '기업윤리: 윤리경영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출판한 지 30년이 돼간다. 당시에 대학에서 기업윤리를 가르치는 경영학과는 거의 없었지만, 이 교수는 이후 수차례 개정판을 냈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 윤리경영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윤리경영의 핵심은 법과 규제 같은 외부의 통제가 아닌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경영이다. 우리 기업들도 요즈음 ESG 경영을 강조하면서 그린 펀드를 조성하고,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다. 얼핏 우리나라도 이제 어엿한 선진국이고 ESG 관점에서도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아직도 4인 이하 규모의 132만개 사업체에서 일하는 236만명의 근로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수당, 연차휴가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주52시간제도 언제 도입할지에 대한 계획도 없다.

ESG는 환경, 사회, 그리고 거버넌스를 뜻한다. 환경은 핵심이 파괴하기 전에 지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원상회복하는 것이다. 산에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줄이고,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이 환경지킴이가 하는 일이지만, 이제는 수없이 많은 용제와 환경호르몬이 들어가는 제품을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다. 제2의 가습기 사건을 막아야 한다. 잘 몰랐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변명이 되지 않는다.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이 편리한 생활을 돕지만, 1만m가 넘는 심해에서도 플라스틱이 발견된다는 기사가 없어야 한다. 화려한 색상, 수려한 디자인을 뽐내는 제품의 원재료와 처리 과정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탄소중립은 서비스업이 아닌 제조업체들의 중장기 과제가 돼야 한다.

사회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기준은 올라가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에 대비해서 바지사장을 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투자가 비용이라는 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산재 사망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시된 10만명당 사망사고 비율에 대한 최근 국가통계를 보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몽골, 칠레 등이다. 1000명이 넘는 종업원을 가진 대기업이 장애인은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으면서도 기업 홍보에서 ESG를 강조하는 건 허망한 이야기다. 2016년부터 4년간 금융공공기관 9개의 장애인고용부담금은 해마다 증가했고, 총액은 60억원이 넘었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장애인 의무고용 위반으로 93억원을 납부했고, 이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년 넘게 육성한 임원을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나이 50에 내보내는 대기업에 MZ세대 인재가 모이기 어렵고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와 관련해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의 소유 구조는 취약하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개편도 속도가 더디다. 세습경영도 문제지만, 대기업집단의 잦은 소멸로 인해 소속 기업 직원만이 아니라 해당 업종이나 지역까지 위험에 빠진다. 경영진과 지배주주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는 '거수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 내 설치가 강제되는 수많은 위원회는 벌금과 과태료를 피하기 위해 회의록 작성에 공을 들인다.

쉬운 것만, 편한 것만 내세워 ESG 경영에 앞서가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문제다. 어렵고 힘든 내용들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정부가 법과 규제로 기업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기업윤리가 바로 설 수 없고 진정한 ESG 경영도 불가능하다. 기업가정신이 자유로운 의지인 것처럼 ESG 경영에 대한 접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CEO의 솔선수범이 전제돼야 한다. 개인의 내로남불도 문제지만 기업과 조직의 내로남불은 더 위험하다. 5000만 국민의 생존과 번영의 기초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면 전 한국경영학회장·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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