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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비트코인 비틀기] 엘살바도르의 목표는 비트코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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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의 부패 속에서 탄생한 포퓰리스트 대통령인 '나이브 부켈레'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가라앉는 엘살바도르의 경제력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이면서 달러는 포기하지 않아

전문가 "엘살바도르의 목표는 비트코인이 아닌 달러다"

가상화폐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광풍’으로까지 비견됩니다. 하지만 광풍이 불수록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까지 함께 휩쓸려가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차분히 가상화폐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트코인 비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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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지난 9일(현지시간)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승인했다. 의회에서 승인안은 84표 중 62표를 받으며 압도적인 찬성 속에 통과됐다. 화폐를 목적으로 탄생한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부여받은 셈이다. 엘살바도르의 결정은 호재로 작용해 이날 비트코인은 12.43% 상승했다.

엘살바도르의 결정에 여러 시선이 엇갈린다. 변동성이 큰 화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가 하면 용기 있는 결단이며 기술력을 받아들이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부는 엘살바도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중남미 국가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수용하는 결정을 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는 리더일까. 아니면 39살이란 리더치곤 적은 나이에 행하고 있는 치기 어린 포퓰리스트의 행보에 불과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문가들은 부켈레 대통령의 목적은 비트코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부켈레 대통령은 무엇을 노리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였을까.

정치에 대한 환멸 속에 탄생한 포퓰리스트 대통령
먼저 부켈레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 법정화폐 콜론을 포기하고 미국의 화폐 달러를 받아들일 정도로 불안한 역사를 가졌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엘살바도르엔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오지만 1931년 군사쿠데타로 인해 정권이 무너진다. 1980~1992년 군사정권과 좌파 게릴라 간 내전이 일어나고 유엔의 중재로 휴전을 맺는다. 이후 좌파정당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 해방 전선(FMLN)과 우파정당 민족공화연맹(ARENA)이 돌아가며 정권을 차지하지만 심각한 부패에 대중들은 정치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내전 이후 뿌려진 무기들은 회수되지 않고 조직범죄에 활용돼 대중들의 불만은 더 커져갔다.

이 사이에서 탄생한 인물이 부켈레 대통령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제3정당 국민통합대연맹(GANA) 소속으로 2019년 2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기업인 출신이면서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시장을 지냈던 그는 기성 정치인을 비판하는 시원시원한 입담과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중들의 호감을 샀다. 실제로 그는 시장 재임 시절 청소년 교육과 복지를 지원하는 등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안으로 조직범죄에 접근했고 재임 1년 만에 산살바도르의 범죄율은 16% 떨어졌다.

그는 대중의 인기를 타서 권력을 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 지형은 양당의 차지였다. 지난해 2월 부켈레 대통령은 치안을 강화하기 위한 1억900만달러(약 1217억원) 규모의 ‘영토제어계획’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야당의 반대에 통과가 쉽지 않았다. 그가 소속된 GANA는 의회 84석 중 11석만 차지하고 있던 소수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켈레 대통령은 의회에 군대를 투입했다. 군대가 의회에 들어간 것은 1992년 내전 종식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대중과 영합한 포퓰리스트적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은 반발했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오히려 대중들을 동원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는 “거리로 나와 의회를 압박하자”는 메시지를 보냈고 지지자들은 국회 밖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도 포퓰리스트 독재자적 성격을 띤 정책을 펼쳤다. 엘살바도르 행정부는 이동금지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을 감금했다. 이에 대법원은 불법감금이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다수의 생명을 위한 결정이었다며 무시한다.

성과를 못 내는 포퓰리스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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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켈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4월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2021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엘살바도르는 조사대상 180개국 중 82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74위보다 8단계 하락한 순위인 동시에 중남미 국가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10점 만점에 5.9점을 받으면서 세계 77위에 오른다. 이 역시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EIU는 엘살바도르만큼 독재로 향하는 국가가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양당의 부패 때문에 부켈레 정권이 탄생했지만 부패 문제를 잡지도 못했다. 올해 1월28일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0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100점 만점에 36점을 받으며 조사대상 180개국 중 104위를 차지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코로나19 이후 엘살바도르 행정부에 권력이 더욱 집중되면서 코로나19 조달 관련 비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중앙아메리카경영관리대학원(INCAE) 비즈니스 스쿨에서 발행한 ‘코로나19 공중보건 비상사태 기간 중 정부조달 투명성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0.42점을 받아 과테말라, 온두라스보다 낮은 것을 나타났다. 이전까진 과테말라, 온두라스보다 투명성만큼은 더 높았다.

이 모든 걸 희생했지만 국민들이 밥이라도 잘 먹게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엘살바도르의 경제 상황은 최악에 다다르고 있다. 민주주의를 포기한 대중들을 달랠 성과도 못 내고 있는 셈이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의 2020년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엘살바도르의 수출액은 2019년 대비 15.4% 줄었다. 반대로 부채비율은 급증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의 공공부채는 27억7300만달러로 2017~2019년 부채 합계인 25억5500만달러보다 많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엘살바도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2019년 70%에서 2022년 90%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제금융기관의 시선도 어둡다. 올해 초 무디스는 엘살바도르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앞으로 엘살바도르가 수행해야 할 자금조달 규모가 큰데 달러가 들어올 곳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경제분석가들은 엘살바도르가 실질적 경제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으로 달러를 벌겠다'…지지율에 힘입은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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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출처=부켈레 대통령 트위터)


수출은 줄어들어 엘살바도르의 법정화폐 달러는 동 나기 시작했는데 써야 할 돈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부켈레 대통령의 신당 ‘새로운 생각’이 압승을 거두는 등 여전히 국민의 지지도는 크다. 이에 부켈레 대통령은 달러를 벌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다. 바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엘살바도르 정부가 정말 비트코인을 화폐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달러라는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사용하기 싶었다면 달러를 포기해야 하는데 달러는 여전히 법정화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에 몰린 국제적 관심을 이용해 달러를 벌어보려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면서 달러와 부수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홍 교수는 “비트코인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국가가 비트코인을 팔아서 달러를 벌 수 있다”며 “또한 비트코인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라는 타이틀을 통해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관광하러 올 수 있어 관광 수입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면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관광객을 불러 모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엘살바도르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기준, 환율, 과세, 그리고 화폐 통제력
하지만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이기엔 앞으로도 힘들 것으로 점쳐진다. 변동성을 차치하더라도 기준, 환율, 과세, 무엇보다 통제력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준이다. 비트코인을 화폐로 사용하려고 해도 어떤 거래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어느 거래소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의 거래동향에 한 나라의 경제 주권이 묶여버리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환율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법정화폐인 만큼 다른 국가의 화폐와 교환할 때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시시각각 가격이 변하며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더 나아가면 환전이 쉽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신뢰성도 해칠 수 있다.

과세 문제도 남아 있다. 탈중앙화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비트코인 거래를 추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해커들의 지갑을 추적한 바 있지만 거래소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거래소가 아닌 개인 지갑을 통해 거래한다면 지갑의 개인 키를 국가가 압수하지 않는 이상 과세할 수 없다. 이 교수는 “국가가 공인한 지갑을 만들어도 과세는 불가능하다”며 “국가 공인 지갑에서 개인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옮겨버리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화폐를 통제할 수도 없다.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순간 국가는 비트코인을 찍어낼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을 감안했는지 부켈레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인 지열을 통해 비트코인을 채굴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전력량은 1년에 133.68테라와트시(TWh)에 달한다. 하지만 국제재생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엘살바도르에서 생산된 지열 에너지는 204메가와트시(MWh)에 불과하다. 1년에 전체 비트코인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 대비 0.00000152603% 수준의 전력량만 채굴에 사용하는 셈이다. 사실상 채굴은 불가능하며 국가가 필요할 때 비트코인을 시장에 공급할 수도 없다.

홍 교수는 “결국 엘살바도르의 결정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달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왜 화폐가 될 수 없는지 보여주는 예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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