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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라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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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끅끅 울음 참는 기러기 아빠도 남자 붙잡는 여자도… 그 앞엔 라면

정치 논란, 재벌 이혼 소송에도 등장… 굴곡진 역사처럼 한국다운 맛

‘라면왕'을 추모하며 강고하게 스크럼 짠 면발을 끓는 물에 빠뜨린다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했다. 이른 새벽 구례구역에 도착해 역 광장에서 밥을 잔뜩 짓고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 먹었다. 남은 밥은 짊어지고 화엄사 옆 돌계단길을 올라 노고단으로 향했다. 점심 때가 되어 출출해지면 라면에 아예 식은 밥을 넣고 함께 끓였다. 국물이 졸아붙어 개죽처럼 돼도 맛있게 먹고 다시 걸었다.

야영장에 도착하면 라면에 김치, 참치 같은 것을 넣고 끓여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까지 싹 해놓고 배낭 깊은 곳에서 비장의 술병을 꺼냈다. 캡틴큐였다. 병 뚜껑에 한 잔씩 돌려 마시면서 역시 술은 위스키야, 하고 탄복했다.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좋은 술을 안주도 없이 마셔? 그러면 대꾸했다. 라면 끓여.

천왕봉 표지석 뒷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쓰여있었다. 우리는 “라면에서 발원됐지”라며 킬킬거렸다. 라면은 가볍고 푸짐했기에 배낭에 넣어 갈 식량으로 최적이었다. 밥을 만 매운 국물은 다시 걸을 힘을 주는 휘발유였고 나트륨과 인공조미료는 흘린 땀을 보충하는 영양제였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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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정색하고 예찬하기는 어렵다. 라면은 그 태생이 대용품이며 밥을 대체할 수는 없다. 별미일 때 환대받지만 주식일 때는 천대받는다. 그러므로 그 치명적 약점은 일관성과 지속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불량식품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건강식품으로 분류될 수도 없다. 대개 라면은 평소 부엌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유일하게 완성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성별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혼자 사는 남자 또는 여자가 유고(有故) 상태인 남자가 장복(長服)하다가 위장이나 심지어 뇌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조폭이면서 기러기 아빠인 남자가 주인공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외국에 있는 가족이 보내온 동영상을 보며 라면을 먹는다. 허허 웃던 얼굴이 착잡해지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남자는 라면 냄비를 냅다 집어던진다. 잠시 후 남자는 끅끅 울음을 참으며 라면 찌꺼기를 치운다. 이 장면에서 나는 남자보다 라면이 더 불쌍했다.

라면 먹을래요? 라고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여자가 물었을 때 남자는 그 사랑의 유통기한이 짧음을 감지했어야 했다. 여자는 집 앞까지 데려다 준 남자에게 커피 같은 전형 대신 라면이란 파격을 제안한다. 라면 끓이기도 전에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자고 갈래요? 안치지도 않고 뜸들이지도 않는다. 그냥 붓고 끓인다. 남자는 사랑맛 MSG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그리고 이내 라면이 눅눅해지자 묻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면은 정치적이다. 대통령 부부가 라면 먹는 장면을 사진 찍어 그 소탈함을 선전했던 자들은, 정권 바뀌고 세월호 참사가 나자 체육관에서 쪽잠 자다 컵라면 먹은 장관을 ‘황제 라면’으로 쏘아붙여 쫓아냈다. 그가 카메라 없는 한식당에 가서 든든히 한끼 채웠으면 무탈했을 것이다. 쉽게 말해 그의 죄는 반대 세력의 전유물인 ‘서민 코스프레’를 건드린 것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삼성가 사위가 된 사람은 이혼 소송 도중 이렇게 말했었다. “아들은 나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라면을 처음 먹어봤고 사람들이 얼마나 라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이 부부에게 라면은 부동(不同)과 불화의 상징이었다.

라면은 고향의 맛이라기보다 한국의 맛이다. 한국 음식 귀한 외국에 살거나 여행하다가 라면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맞아, 이거였어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김치 파는 홈쇼핑에서 라면에 김치 얹어 먹는 장면을 볼 때 그 맛이 어떤 것임을 정확히 아는 나는, 김치 대신 라면을 산다.

라면을 요리 반열에 올리긴 옹색하지만 한국 음식 집대성에서 뺄 수는 없다. 일종의 구황(救荒) 식품으로 개발된 한국의 라면은 값싼 대용식에서 별미의 간식이 됐다가 다이어트와 건강의 주적 신세가 됐다. 그러나 라면 한 그릇은 여전히 소시민이 감행할 만한 일탈이며 감당할 수 있는 해악이다.

한국을 세계 1위 라면 소비국으로, 농심을 세계 1위 라면 회사로 키운 ‘라면왕’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그의 형님보다 라면왕 동생이 전혀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납면(拉麵)이든 일본의 라멘이든 원조는 중요치 않다. 라면은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한국인을 입맛으로 통합했다. 라면왕은 보잘 것 없던 즉석 식품에 인생을 바쳐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빨간색 강렬한 봉지를 뜯고 강고하게 스크럼 짜고 있는 라면을 끓는 물에 수장(水葬)하며 조의와 감사를 표한다. 잘 먹겠습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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