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는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후보 선출을 연기할지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연기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흥행실패론'을 제기합니다. 이대로라면 밋밋한 온라인 경선 끝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볍게 당선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죠.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는 '원칙론'을 내세워 기존 일정대로 9월에 마무리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는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안 그래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때) 공천 안 하기로 한 당헌·당규를 바꿔 공천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며 "공당이 문서로 한 약속들은 정말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켜져야 국민들이 그 당을 믿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선경선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 국민들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특히 여당 쪽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경선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세력이 당을 뛰쳐나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1992년 민주자유당의 이종찬 후보와 1997년 신한국당·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이인제 후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여당에서는 경선을 시작할 때 조금이라도 '해볼 만하다' 생각했던 패배 후보는 매번 탈당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에서도 착잡한 심정을 표하는 부분이 꽤 됩니다.
김영삼 대통령 이인제국민신당(가칭) 대통령 후보접견오찬담소(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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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로는 경선을 패배한 후보가 '해볼 만하다' 싶은 상황이 없었죠. 어차피 야당 후보가 승리할 대선(2007·2017년)이거나, 이례적으로 여당 내에 한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보인 대선(2012년)뿐이었습니다.
야당 쪽은 어땠으려나도 궁금하시죠. 쭉 정리해보니 야당 쪽에서는 경선불복이 나온 적이 없더군요.
지난 대선에서 패한 후보가 '대세론'을 타고 그대로 다시 출마한 경우(1997·2002·2017년)가 많고, 치열한 경선·단일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정권교체를 위해 끝까지 협력(2007·2012년)하게 됩니다.
여하튼 오늘의 주제는 여당 경선과 대통령의 연설입니다. 당이 쪼개지는 상황에 대한 한탄이 주를 이룰 텐데요. 대선을 1년여 앞둔 여당들은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 연설문을 통해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당의 첫 대선후보 경선
여당에서 유의미한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것은 1992년부터입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치러진 첫 선거에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노태우 후보를 단일후보로 사실상 추대했기 ??문이죠.
당시 기자들은 노 대통령의 임기 초반부터 차기 여당 대선후보를 어떻게 선정할지 질문공세를 멈추지 않았는데요. 차기 권력구도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혹시나 군사정권 시절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있던 탓으로 보입니다.
1989년 중앙일보 창간기념 특별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은 후계자 선정방식을 묻는 질문에 "취임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다음 주자가 너무 빨리 부각되는 것은 꿈을 가진 당사자나 당, 또는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답변합니다.
1991년 중앙일보 창간기념 특별회견에서는 혹시 후계자를 직접 지명할지를 묻는 질문까지 나옵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차기 후보 선출절차는 당헌에 정해져 있다. 민자당 대통령 후보는 당헌에 따른 민주절차에 따라 선출할 것"이라 답합니다.
대선이 열린 1992년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경선불복에 아쉬움을 표하는 연설이 등장합니다. 김영삼 후보에 대항하는 단일화 후보로 나섰던 이종찬 전 의원이 경선을 거부한 탓인데요. 노 전 대통령은 5월 민자당 2차 전당대회에서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하고 나섰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 데 없다"고 고백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차기 대통령 악수1(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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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에 버림받고 말 아낀 兩金
대한민국 경선불복의 역사를 논하면서 이인제 전 의원을 ?惠塚� 수 없습니다. 한국 정치사의 두 기둥인 양김(兩金,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경선에서 패배한 후 탈당하는 일을 반복했는데요.
아쉽게도 두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이 전 의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7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후보자들을 하나로 묶어 "모두가 경륜과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인물들이다"라고 해준 정도가 전부네요.
김영삼 대통령,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선출축하연참석(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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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어서 "경선 과정에서의 사소한 감정대립과 갈등은 이 화합의 용광로에서 녹여 버립시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라고 주문했지만, 다들 아시는 것처럼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전 의원에 대한 언급은 물론 대선 경선에 발언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은 최초로 국민참여경선을 시행됐고, '16부작 정치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는데요.
여러모로 현직 대통령이 굳이 입김을 넣는 모양새가 안 좋아 보였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盧 "이인제가 없으면 호남 지역주의는 필패"
이인제 전 의원에 대한 평가는 그와 가장 치열하게 경쟁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나옵니다.
2007년 원광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여권이 지역주의에 기대지 말고 정책대결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특히 진보진영이 지역주의를 버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전자계산기로 두드려 보면 (1997년 대선에) 이인제 씨가 동쪽에서 500만표를 깨주지 않았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며 "이인제 씨가 또 있습니까,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지역주의를 깨고 정책대결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강조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7년에는 심각한 레임덕으로 여당이 사분오열 상태였는데요. 당시 난립해있던 여권 후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덩달아 많아집니다. 대부분은 쓴소리였지요. 공교롭게도 현재의 대선주자들과 상황이 유사한 후보들이 많아서 지금도 되짚어볼 만한 발언이 꽤 됩니다.
우선 2007년 5월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국민에게 드리는 글-정치, 이렇게 가선 안 됩니다'란 글을 통해 "여러 당이 통합하여 자리를 정리해 놓고 모시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현대의 정치는 군왕의 정치가 아니다"라고 역설합니다. 정치권·경선판에 본격 등판하지 않은 유력후보들을 향한 메시지였는데요. 당시 당적이 없던 손학규 후보나 오랜 기간 대권후보로 거론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겨냥한 글로 해석됩니다.
참여정부 평가포럼 대통령 특별강연1(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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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복구불능 수준으로 분열해버린 6월에 이르러서는 경선룰 다툼에 힘을 허비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합니다.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지금 경선 조건을 갖고 샅바싸움을 하는데, 작은 계산을 넘어서고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랬고 이명박 씨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며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불쾌감이나 불신, 이런 것들을 다 뛰어넘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그해 3월 한나라당에서 이 전 대통령의 '숙적'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식을 택한 일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용 기자]
[대통령의 연설 지난회차]
1회 - 박정희 "여러 대책에도 집값 올라" 사죄…부동산전쟁 60년
2회 - 집값 잡기에 가장 간절했던 대통령…盧 아닌 MB?
3회 - 野서울시장 칭찬한 유일한 대통령…盧 "청계천으로 서울 환해져"
4회 - 여가부 만든 노태우…女공천확대 요청엔 "여자들이 안뽑아"
5회 - 커지는 젠더갈등…軍가산점 폐지한 대통령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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