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홍성훈오르겔바우를 설립하고 2004년 경기 양평군 양서면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작업장은 두 군데로 나뉜다. 첫 번째는 100여 년 된 캐나다산 가문비나무(스프루스·spruce) 원목 등을 판형으로 가공하는 제재소다.
오르겔을 짓는 작업실에 들어서자 나무로 된 설치작품 같은 뼈대(frame)가 서 있다. '바우'(bau)는 '건축'이란 뜻이다. 이동식 작은 오르겔은 작업 공정이 훨씬 어렵다. 소리를 위해 파이프 길이를 줄일 수는 없고 작은 뼈대에 내장해야 하기에 트롬본이나 트럼펫처럼 관을 꺾는다. 정밀한 작업 공정이 필요하다. 그는 목조형 조각가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도 협업한다.
서울 구로아트밸리 ‘풍관’ / 사진제공 = 홍성훈 마이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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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서울대 음대 전자음악연구소와 협업으로 서울 구로아트밸리 콘서트장 입구 벽면에 디지털과 파이프를 이용한 소리조형물 '풍관'을 제작했다. 케이스, 연주대 등의 형태를 해체하고 파이프만 남겼다. 공연 15분 전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모터가 작동해 바람을 만들고 그 바람이 각 파이프로 전달돼 음악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홍성훈은 이 작업을 하면서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관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작업장을 방문하기 전 들른 양평군 국수교회(2014년) 공간의 주인공은 단연 파이프오르간, 오르겔이다. 공간의 전면에 버티고 있는 오르겔 옆으로 돌아 오르겔 안으로 들어가 봤다. 길고 짧은 금속관과 목재관은 하나 하나 풀피리 소리가 난다. 기도라는 행사를 하는 곳인 교회에 오르겔이 주역이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홍성훈의 소리는 프랑스 로맨틱풍을 바탕으로 한다. 오르겔은 연주하는 시간보다 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다. 공간에서의 비주얼 자체가 중요하다. 홍성훈은 디자인을 먼저 고려한다. 그의 열세 번째 작품 '산수화오르겔'은 양평의 산과 남한강, 밤하늘의 은하수를 형태·디자인화했고, 지역에 한때 많았던 뻐꾸기 울음소리도 시각화하려 했다. 오르겔이 지향하는 자연의 소리는 17가지 각기 다른 악기를 담는다.
국수 교회 ‘산수화오르겔’ / 사진제공 = 홍성훈 마이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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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7~8년 전 여름 서울 강남 도심을 걷다 불쑥 들어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채광만 있는 어둑한 공간에서 오르겔의 장엄한 소리와 맞닥뜨렸다. 접해 보지 못한 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홍성훈은 오르겔은 천상에서나 있을 법한 음역을 인간과 만나게 하는 프리즘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에도 쓰인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1908~1992)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세상의 끝, 절체절명의 시공간을 표현한다. 메시앙도 새소리를 곡으로 지었다.
산수화 오르겔은 현대적인 입체 회화 작품과도 같다. 국수교회는 처음 설계 단계에서부터 지역 문화센터 기능을 염두에 두었다. 높지 않은 포디엄(podium)은 길지 않은 오페라 극을 올릴 수도 있다. 포디엄의 전면은 마당극의 무대 모양으로 건물은 원형으로 작은 체육관처럼 둘러싸면서 좌석이 배치된다. 마당극 무대에는 오케스트라가 앉는다. 소리의 난반사와 흡음을 고려해 싸고 효율적인 벽돌이 실내 건축 재료로 쓰였다.
교회 오르겔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몇 년이 지나자 중장년층도 막혔던 귀가 열리는 경험을 한다.
연주자의 건반은 랜선으로 악기와 연결되어 FA(Factory Automation) 신호로 바뀐다. frequency(주파수)=c(속도)/λ(파장의 길이). 속도는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저녁 연주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는 이유다. 짧은 관은 높은 음, 굵고 긴 관은 낮은 음을 낸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 않았나.
피타고라스는 하프 현의 길이나 현에 미치는 힘이 간단한 정수비례 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고대 그리스의 5도 음률에 기초한 피타고라스 음률이 오늘날 음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며, 음향학의 출발이다.
오르겔이 봉헌된 첫해 소리를 접한 아이들 중에는 명문대 음대로 진학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7년 9월, 유서 깊은 문화적 전통을 가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슬로브쥐차(생명의빛) 교회에 설치된 열여덟 번째 '나비오르겔'은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한 첫 사례다.
2020년 3월, 서울 화양동성당에서 오르겔을 봉헌하는 날, 첫 소리를 작곡가인 샤를마리 비도르(Charles-Marie Widor)의 토카타(toccata·건반악기를 위한 즉흥곡)로 하였다. 홍성훈은 프랑스의 성술피스(St. Sulpice) 대성당의 오르겔을 모티브로 제작했고 비도르가 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다. 성술피스는 오페라 마농의 무대이기도 하다. 홍성훈은 우리에게 맞도록 보다 따뜻하고도 장엄한 소리를 만들려고 했다.
서울 화양동 성당 / 사진제공 = 홍성훈 마이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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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충북 제천 200만평 규모 배론성지 내 성당. 제작 기간 2년이 걸린 카펠레 오르겔을 설치했다. 오르겔을 바닥이 아닌 왼쪽 벽면 중간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게 했다. 공간과 음향을 고려했을 때 가장 안정적인 위치였다. 악기가 사람 위에 자리 잡았으니 소리 방향은 아래로 쏟아진다. 내부 천장이 빗각이 져 있어 오르겔 내부 파이프도 빗각 디자인을 했다.
제천 배론 성지내 성당 / 사진제공 = 홍성훈 마이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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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작품은 이 밖에도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서울 논현2동 성당, 양평 종합가정치유센터 하이패밀리 안 청란교회 채플실 등에 설치돼 있다. 오르겔은 의외로 건축적 조건에 크게 간섭받지 않는다.
금년 가을 준공 예정인 강화도 묵상교회는 이은석 건축가와의 협업으로 만들었다. 바다가 보이며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채광을 최소화한 구조다. 오르겔이 콘크리트 벽체에 내장된다. 보편적인 현대건축 재료와의 조합이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독일에서 만든 반도네온은 19세기 중반 이후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남미로 건너가 탱고 음악과 만난 이후 지금은 남미 악기처럼 되어버렸다. 인도 전통 음악 라가는 바이올린으로 그 정서가 잘 표현된다.
홍성훈은 오르겔과 아코디언(손풍금)은 우리 정서와 잘 맞는다고 말한다. 한국 전통 민중음악은 풀피리, 생황·대금·퉁소·아쟁·해금·나발·태평소 등 피리 악기 군락으로 이루어진다. 오르겔은 건반을 누르면 파이프의 바람 마개가 열리고 그사이로 바람이 관통하면서 피리처럼 소리를 낸다.
오르겔을 종교시설에 가둬두지 말고 일반 콘서트홀이나 열린 광장으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많은 수의 오르겔이 유럽에서 한국으로 수입된다. 유럽 기술자들이 기계적으로 설치한 후 기념사진을 찍으면 그들의 임무는 종료된다. 홍성훈은 크기와 상관없이 1년에 최대 2대의 오르겔만 제작한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첫 작품을 돌본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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