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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월드컵예선 일본전 10대0 패…독재는 축구에도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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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역대 ‘최약체’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이 28일 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예선전에서 일본에 10대0으로 졌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일본에 크게 뒤지는 미얀마는 주축 선수들의 무더기 이탈로 경기 시작 전부터 패색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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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축구대표팀이 27일 일본과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최종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축구연맹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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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은 27일 10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군사정권에 항의하며 대표팀 소집에 불응했다고 전했다.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미얀마 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수비수 조 민 툰, 현역 공격수 중 국가대항전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조 코 코 등이 대표팀 선발을 거부했다. 많은 축구선수들이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발생 직후 군사정권 하에서는 미얀마 대표로 경기에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월13일에는 축구선수들이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의미로 길거리에서 축구 경기를 열기도 했다. 대표팀 골키퍼 조 진 텟은 당시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거리에서만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선수 선발부터 애를 먹으면서 미얀마 대표팀은 일본 입국 일정도 한 주 늦춰야 했다. 미얀마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 어려운 시기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며 출전을 거부한 선수들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책임이 있다. 모든 미얀마 시민들의 응원과 축복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표팀 소집에 불응한 골키퍼 조 진 텟은 전날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경기에 나서는 대표팀 동료들에게 “시민들과 연대하자”며 “선수들이 전 세계 관중들 앞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일본과의 경기 중 미얀마 대표팀 선수들은 세 손가락 경례 등 군부에 대한 항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FIFA는 경기 중 어떠한 정치적·종교적 의사 표현도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얀마축구연맹은 이번 대표팀 소집 과정에서도 선발에 불응한 선수들에게 향후 출장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압박한 바 있다. 조 진 텟은 “젊은 선수들은 대표팀 경기를 보이콧할 경우 미래를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얀마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취재진에 “(항의 의사 표시는)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예선은 2023년 아시안컵 예선도 겸해 치러진다. 미얀마는 월드컵 본선 진출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55년만의 아시안컵 출전을 위해 이번 예선전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군부가 이번 예선전을 미얀마의 상황 안정을 국제사회에 선전하는 장으로 이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경기가 열리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 미얀마인은 아사히신문에 “군부의 위협을 받아 참가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응원은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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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축구대표팀 공격수 조 코 코가 이달 축구공을 트래핑하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이 영상에서 “테러리스트 군부 독재자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위터 갈무리


군사정권의 복귀는 이제 막 부활에 시동을 건 미얀마 축구에 또 한번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미얀마 축구대표팀은 1970년대 이전까지는 아시아의 확고한 강호였다. 1966년, 1970년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고,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동남아시아축구대회에서 5연패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군부 집권 장기화와 국가 경제의 급격한 쇠퇴, 고립주의 경제정책은 1970년대부터 사회 전분야에 암흑기를 가져왔다. 미얀마 축구대표팀 역시 1973년 이후로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며 침체에 빠졌다. 미얀마축구연맹은 부족한 자금 지원과 열악한 기반 시설로 인해 재능 있는 축구 선수를 키워내는 데 실패했다.

간혹 재능 있는 축구 선수들도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일찍이 선수생활을 접기도 했다. 군부는 1988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자 5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고 축구리그를 중단시켰다.

군사정부의 각 부처들이 운영하는 축구팀들로 구성된 축구리그가 있었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군사 정부 시절에는 무기 밀매 혐의를 받거나 마약밀매 혐의를 받는 친군부 인사가 축구팀 양곤 유나이티드 등의 구단주를 맡으면서, 축구팀들이 서방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미얀마의 정치와 축구에 관한 책 ‘트로저 피플’의 저자 앤드루 마샬은 타이베이타임즈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부패하고 불평등한 제도에서는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군부가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계획을 내놓은 2010년대 들어서야 미얀마 축구대표팀도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제재 빗장이 조금씩 풀리며 FIFA가 미얀마에 축구교실 설립 등을 지원했다. 기반 시설이 만들어졌고,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발굴됐다. 2014년 미얀마 19세이하 축구대표팀은 아시아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고, 세계대회 본선에도 진출했다. 2016년에는 동남아시아축구대회에서 4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군부가 정권을 움켜쥐면서 미얀마 축구는 다시 앞날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미얀마 축구리그의 선수로 활동하다 1988년 리그 중단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한 미얀마인은 아사히신문에 “22세에 축구 인생이 끝나버렸다”며 “미얀마에서 빨리 다시 평화롭게 축구를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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