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민주화운동가 동생
보안군에 끌려가 주검으로
경찰청장인 형은 탄압 선봉
미얀마에서 반군부 시위를 벌이다 지난 24일 사망한 민주화운동가 고 소 모 흘라잉(왼쪽)과 그의 친형으로 군부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탄 흘라잉 중장. 페이스북 갈무리 |
‘군에 몸담았던 형은 경찰청장이 되고 민주화투쟁을 선택한 동생은 보안군에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군부 쿠데타 이후 운명이 엇갈린 한 형제의 이야기는 미얀마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얀마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25일 베테랑 민주화운동가 고 소 모 흘라잉(53)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그는 지난 22일 바고 지역의 한 마을에서 보안군에게 붙잡혔다. 목격자들은 보안군이 체포 전 그를 개머리판으로 폭행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24일 그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의 친구들은 이라와디에 “고 소 모 흘라잉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 끝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 소 모 흘라잉은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에 오른 탄 흘라잉 중장의 친동생이다. 동생은 미얀마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고, 형은 그런 반군부 시위를 진압하는 군경의 핵심 인물이 된 것이다.
고 소 모 흘라잉의 친구이자 민주화운동가인 툰 툰 조 우는 페이스북에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중 한 명은 우리의 동지가 됐고, 한 명은 군견이 됐다”고 적었다.
미얀마의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부터 두 사람의 인생 궤적도 달라졌다. 툰 툰 조 우는 “1988년 두 사람은 카렌주의 전장에서 서로 싸웠다”며 “당시 그의 형은 고 소 모 흘라잉을 죽이겠다고 했다”고 썼다. 1988년 8월8일 양곤에서 벌어진 8888 민주화항쟁 이후, 학생들은 국경지역으로 가 반군부 무장투쟁을 선언하고 버마학생민주전선을 창설했다. 군인이 된 형과 버마학생민주전선에 합류한 동생은 카렌주에서 서로 총칼을 맞댔다.
고 소 모 흘라잉은 이후로도 줄곧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91년에는 당시 연금 중이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정치범으로 감옥에서만 10여년을 보냈다.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하는 단체를 만들고 시민운동을 벌였다.
그와 함께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동료 중 한 명은 이라와디에 “가족 중 군인이 있었음에도 그는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 참여부터 학도병 활동까지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며 “그는 정치 활동에 많은 경험이 있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좋은 동료를 잃어 너무나도 슬프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미얀마 군경에 의한 사망자는 827명에 이른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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