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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비 오는 날 우산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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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실고실하고 따뜻한 집 없던 옛날

소설 써서 아이와 먹고살아야 하는

집엔 젊은 엄마의 불안과 불면 스며

덜컥 땅 사 집 지어 이웃과 더불어

집 길들이고 집에 길들며 살아가기

"글 쓴다는 것은 숨죽여 엿보는 일"


한겨레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5살 어느 날, 장독대 아래 들인 단칸방 세입자였던 나는 일가친척 모여 잔치가 한창인 주인집 툇마루에 신을 신고 올라가 냉큼 똥을 쌌다. 결기에 찬 복수였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주인집 막내아들이 하루가 멀다고 쥐어박고 침 뱉으며 “장독대 밑에 사는 거지, 우리 마당에서 나가!”를 시전하는 것도 아니꼽고 서러운데, 잔칫날이 되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마당에 나와 어수선하게 굴지 말고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으라며 난데없이 금족령을 내렸던 것이다.

좁고 컴컴한 방에서 널찍하고 환한 마당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던 내가 정확히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쳐 자해공갈형 복수를 결행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새벽부터 잔치음식을 만들다 혼비백산 달려 나와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하던 젊은 엄마의 새카만 정수리,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저 영악한 게 맨궁둥이를 안 보이려고 치마까지 차려 입고 나왔더라”고 말하며 웃던 얼굴이다. 공장지대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건넌방, 뒷방, 창고에 장독대에까지 방을 들여 한집에 너덧 가구는 기본이던 1970년대 말 수도권 소도시, 장독대 밑 좁고 컴컴한 방이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이다.

공선옥 작가의 첫 집은 1960년대 초, 전남 곡성 산골마을의 세 칸 초가집이다. 마을이 서향이라 여름에는 “지는 해의 무차별적인 공격” 때문에 덥고, 겨울이면 몰아치는 북서풍 때문에 매섭게 추운 집. 작은 봉창으로 볕이 들락말락해 “대체로 낮에도 어둑시근”한 그 집에는 구렁이가 출몰해 시렁 위 바구니에 든 달걀을 천천히 하나씩 삼키곤 스르르 사라졌다는 괴담이 전해진다. 집 뒤편 대나무 숲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쪼그려 앉아 고구마를 파먹고 산양이 내려와 물을 마시던 이 목가적인 집은 그러나 ‘새마을 시대’를 지나며 ‘조국 근대화’란 미명 아래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집은 공간인 동시에 시간이다. 지어지고 낡아지고 부서지며 그 집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고 그 집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을 품는다. 그래서 공선옥 작가가 나고 자라고 견디고 벗어나고 머문 집들에 관한 이야기인 <춥고 더운 우리 집>을 읽노라면, 어쩐지 당신이 살아온 집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구수한 입담과 생기 넘치는 에피소드 사이사이, 잠깐 즐거웠고 대부분 지긋지긋한 나의 옛집에 얽힌 추억들이 칙칙하게 피어난다.

한겨레

한겨레출판 제공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여러 집 가운데 작가가 염원했던 ‘고실고실하고 따뜻한 집’은 한곳도 없다. 초가집 다음 집은 도시로 나갔던 아버지가 10년 만에 돌아와 남의 땅에 지은 ‘부로꾸집’인데, 시멘트 벽돌로 모양새만 그럴듯하게 지은 이 신식 집에는 마루도 부엌도 없고 아궁이가 낮아서 비만 오면 물이 고였다. 부로꾸집을 떠나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살았던 주인집 부엌 옆 ‘식당 방’은 이후 작가가 “10년 넘게 떠돌 무수한 방, 집이 아니라, 방들 중 첫 번째 방”이었다. 스무 살 때는 서울 정릉 꼭대기에 있는 공장 기숙사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아가씨들’과 복닥복닥 살았는데, “울음으로 꽉 찬 방”에서 울지 않으려 버티다 “울음이 목구멍 끝까지 꾸역꾸역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뛰쳐나왔다. 이웃 주민들이 ‘영구’라고 불렀던 영구임대아파트는 소설을 써서 아이와 둘이 먹고 살아야 했던 젊은 엄마의 불안과 불면이 베니어판 틈새마다 스며 있는 집이다.

그런데 그처럼 불편하고 부족한 조건이 오늘의 작가를 만들었다. ‘부로꾸집’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들창문을 통해 작가는 세상을 빠꼼히 내다봤고, 지금도 그렇게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숨죽이고 엿보는 것 같다. 내 미운 부로꾸집 들창문 아래서 그랬던 것처럼”이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그 미운 부로꾸집 아궁이에서 물을 퍼내며 읽은 책, 정릉 꼭대기 기숙사방에서 아가씨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읽던 책들이 글 쓰는 데 힘이 됐다. ‘영구’에서 함께 살던 이웃들은 작가가 당시에 쓴 단편 ‘목마른 계절’에 ‘현순’ 씨와 ‘미스 조’로 등장해 맹활약을 펼쳤다.

“아이들과 짐들과 함께 곡예하듯이 떠돌다가 이 나라를 떠나 독일까지 갔던” 작가는 어느 날 고향에서 멀지 않은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에 덜컥 땅을 샀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그 땅에 작은 집을 짓고는, 이웃과 어울리고 푸성귀를 키우고 더러는 옛일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집을 길들이고 집에 길드는 일이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집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묻는다.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 캠프.” 또한 집이란 “내 집뿐 아니라 이웃집이 안녕한 것을 보고도 안심이 되는 것”이며 “내 집과 이웃집이 한데 어울려 정다운 한 풍경을 이룰 때 명실상부한 집이 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텐트를 치고 살아도 좋으니 서울에 땅 30평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이유가, 5살 때 갖지 못했던 마당에 대한 오랜 욕망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 욕망을 실현하려면 다시 태어나는 방법뿐이라는 걸 받아들인 뒤엔 영 시들했던 ‘집’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문득, 내가 마음 편히 나이 들고 죽어갈 집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살면서 ‘내 마음 속의 집’ 같은 얘기는 하지도 말자, 제발.

이미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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