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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취재파일] 라돈 침대, 그 후 3년…잊혀가는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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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첫 '라돈 침대 유해성 검증 실험'

3년이 지났지만…



2018년 5월 3일, 몇 주간의 취재와 거듭된 회의 끝에 첫 '라돈 침대' 보도가 전파를 탔습니다. 몸에 좋다는 '음이온'을 방출한다던 건강 매트리스는 사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사과가 이어졌고, 우체국까지 동원한 매트리스 수거가 이뤄졌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매트리스들이 하나하나 해체돼 밀봉 보관되어 폐기 방식을 두고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허점이 드러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은 개정됐고 이제 더 이상 '음이온' 물질을 사용한 제품의 제조나 판매, 광고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일견 모든 게 잘 해결되고 개선된 듯 보입니다 . 하지만 누군가에겐 3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못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3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합니다. 바로 피해자들입니다.


"집안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없고, 유전도 없는데 두 번씩이나 암에 걸린다는 게…."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호병숙 씨는 2007년부터 2018년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 약 11년간 라돈 침대에서 생활했습니다. 가족력도 없는데 2015년 암 진단과 수술에 이어 2017년 또 다른 암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호 씨에게만 일어난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지난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백도명 서울대 교수팀이 발표한 <라돈 침대 피해 신고자의 암 유병 현황 분석>에 따르면, 소송 진행 중인 라돈 침대 피해자 5천 명 중 180명이 암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암 유병률(특정 시점 인구 대비 환자 수 비율)은 3.6%로 일반 인구 집단의 1.6%의 2배가 넘습니다. 폐암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남성의 경우 5.9배, 여성의 경우 3.5배 더 높았습니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데이터를 놓고 볼 때, 라돈 침대 사용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매우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라돈 침대 때문에 OO암이 걸렸다'라는 명제를 성립시키긴 어렵습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검찰 수사 결과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라돈 침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해 1월, 침대 제조업체 대표 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린 이유로 "폐암은 라돈 흡입만으로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닌 유전이나 체질과 같은 선천적 요인과 식생활 습관, 또는 직업, 환경적 요인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면서, 라돈이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인 것은 인정되지만 갑상생암이나 피부질환 등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이 입증된 연구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피해는 입었지만 피해자는 아니다?



검찰의 결정 내용을 하나씩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라돈 침대 사태에 대한 접근과 현재 관련 기관들이 지난 3년간 해온 대응의 문제점이 행간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형법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풀어내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폐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암 질환은 검찰 수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입니다. 한 가지 원인만으로 발병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물며,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목되는 담배마저도, 폐암 등의 원인은 맞지만 '담배만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2011년, 폐암에 걸린 흡연자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패소하기도 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살균보존제인 CMIT, MIT 성분을 쓴 제품과 관련해 '유해성 입증이 명백하게 되지 않았다'라며, 업무상 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된 관련 업체(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관계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