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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마음을 치료하는 ‘사이키델릭’에 마음을 열다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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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마음을 바꾸는 방법
마이클 폴란 지음·김지원 옮김
소우주 | 488쪽 | 2만2000원

스위스의 제약회사 산도스에서 일하던 알베르트 호프만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약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1938년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합성물질을 개발했는데 기대했던 치료 효과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5년쯤 시간이 흐른 뒤, 이 합성물질의 기상천외한 효능을 우연히 발견했다. 방치해뒀던 그것을 “어느 날 실수로 소량 섭취”한 호프만은 “자신이 강력한 뭔가를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고, 겁에 질리는 동시에 경탄했다”.

중앙아메리카에는 아즈텍인들이 ‘테오나나카틀’(Teonanacatl)이라고 불렀던 야생버섯이 자란다. ‘신들의 살’(Flesh of the Gods)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조그만 갈색 버섯”을 “의식용으로 사용”했다. 16세기 이곳을 정복했던 스페인 가톨릭교도들이 ‘마법의 버섯’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400년쯤 세월이 흘러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1955년, 맨해튼의 은행가이자 아마추어 진균학자였던 고든 왓슨은 멕시코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 이 마법의 버섯을 맛보았다.” 그는 2년 뒤 주간지 ‘라이프’에 15쪽이나 되는 체험기를 기고해 “기묘한 환영을 유발하는 버섯”을 세상에 알렸다. 이 버섯에서 추출한 물질은 ‘실로시빈’(Psilocyb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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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마야 문명의 ‘버섯 돌’. 중앙아메리카 고대문명에서는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을 종교 의식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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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확실하게 신비 체험 가능’
존스홉킨스대학 논문에 매료돼
금지 약물인 LSD와 실로시빈 탐구

환각제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언젠가 더 널리 이용되기를 바란다
합법화를 위한 몇가지 단서와 함께

미국의 논픽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66)이 뜻밖에도 LSD와 실로시빈에 대한 책을 내놨다. 원서는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 <욕망하는 식물> <세컨 네이처> 등 저서를 통해 국내에서도 상당히 인지도 높은 작가로 꼽힌다. 그동안 자연, 정원, 식물, 음식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다. 하지만 ‘마약’이나 ‘환각제’로 여겨져온 약물에 작가적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이채롭다. 그는 책에서 LSD와 실로시빈 등을 ‘사이키델릭’이라고 통칭한다. ‘환각제’(Hallucinogen)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1956년 만들어진 ‘사이키델릭’이라는 단어가 어원상 정확하다”면서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 단어는 ‘정신의 현현’(Mind Manifesting)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저자는 ‘사이키델릭 세대’가 아니다. 1955년 태어나 197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LSD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이야기들이 만연했던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20대 후반에 “두세 번 정도 마법의 버섯을 해본 것이 사이키델릭 체험의 전부”였다면서, “잠깐 동안 구역질을 참은 후, 네다섯 시간에 걸쳐 낯익은 현실의 근사한 이탤릭체 버전 같은 환각을 즐겼다”고 털어놓는다. 물론 그것은 평범한 젊은이의 ‘소심한 체험’이었다. “자아가 완전히 해체되는 경험”이라기보다는 “그저 저용량의 심미적 경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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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지원자를 상대로 실로시빈의 효과를 실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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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세상의 근본 요소이며 모든 일은 물리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저자는 60세를 눈앞에 둔 시점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LSD를 해볼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고 털어놓는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디너파티에서 탁자 끄트머리에 앉은 여성이 자신의 애시드 트립(환각 체험)을 좌중에게 얘기하면서 “나와 남편은 정기적으로 LSD를 하면서 지적 자극을 받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그녀는 저명한 심리학자”였다. 물론 저자가 사이키델릭을 향해 마음을 더욱 열게 된 계기는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의 논문이었다. “나는 그 논문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들의 연구는 고용량의 실로시빈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신비 체험을 일으키는 데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책은 사이키델릭의 역사와 갖가지 논쟁들, 최근 들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의학적 효용성 등을 다각도로 서술한다. 존스홉킨스뿐 아니라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 UC버클리,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대 등에서 진행된 연구 내용과 결과들이 소개된다. 연구자와 치료사들을 인터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흥미를 끄는 지점은 “손잡이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선” 저자의 실제 체험이다. 책의 겉모습은 사이키델릭에 대한 객관적 도큐먼트처럼 보이지만, ‘나는’ ‘내 생각에는’ ‘내가 겪은 바로는’ 등의 표현이 수시로 등장하면서 저자의 체험과 생각이 펼쳐진다. 자신이 겪은 “압도적인 환각” “완전히 열려 있는 꿈 같은 상태”를 묘사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악명 높은 유해성의 대부분은 과장된 것이거나 사실이 아니다. LSD나 실로시빈의 과다복용으로 죽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두 약 모두 중독성이 없다”. 오히려 “우울증과 중독을 치료”하고, “의식의 확장”을 통해 “진정한 통찰을 제공”한다. 일종의 “정신적 헬스클럽”처럼 “건강한 사람들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 통찰이나 향상은 약물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이키델릭은 그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사이키델릭이 아픈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언젠가 더 널리 이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서가 있다. “그냥 합법화되면 좋겠다는 것은 아니”라며 “사이키델릭을 한 사람들이 멍청하고 위험한 짓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배드 트립’(Bad Trip)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임상에서 신중한 심사” “경험 있는 가이드의 도움” 등을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LSD와 실로시빈의 르네상스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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