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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법원, ‘김일성 회고록’ 판매 금지 신청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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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출판사 민족사랑방이 출간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법원이 북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신청인(채권자)들이 부담하도록 했다고 14일 밝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박병태)는 전날 “신청인들의 주장과 제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신청을 구할 피보전 권리나 그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 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했다.

앞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김일성 일가를 미화한 책이 판매·배포되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성·인격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날 재판부는 “서적의 내용이 신청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행위가 신청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해 사전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일성 회고록 판매·배포 행위는 국가가 헌법을 수호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선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신청인들에게 사법상 권리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신청인들은 자신들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신청인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신청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신청인들을 법률 대리하는 도태우 변호사는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가처분 신청인 중에 한국전쟁 납북자의 직계 후손이 있었다”며 “전쟁 책임자 김일성을 거짓 우상화한 책을 합법으로 판매·배포하는 것은 납북자 직계 후손의 인격권을 짓밟는 사법상의 권리 침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신청인들이 법원의 기각 결정 직후 항고장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전쟁 납북자 가족 23명은 14일 같은 취지의 김일성 회고록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서부지법에 새롭게 제출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도 변호사는 “이번 가처분 신청은 한국전쟁 납북 인사 가족 위주로 해 개인적인 보호 이익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은 지난달 1일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전 8권)’를 출간했다. 이 책은 2011년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결한 동명의 북한 원전과 똑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김일성의 업적을 대외에 선전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이 국내에 정식 출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등에서 허가를 받고 열람해야 했다.

[서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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