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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Zoom UP] 38조 공기업 수장에 측근 앉혔다가… 서른넷 최연소 총리 쿠르츠, 물러날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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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정계의 ‘저스틴 비버’

녹취록서 “넌 원하는 걸 가졌어”

측근은 “총리님 사랑해, 행복해”

위증 들통나며 기소 당할 위기

조선일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12일(현지 시각) 빈의 총리 집무실에서 열린 각료 회의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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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4세로 세계 최연소 국가 정상인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12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었다. “항상 의원들 앞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하려 애썼습니다. 부적절한 언행을 한 적이 없습니다.” 결백을 호소했지만 여론은 냉담하다. 잘못이 없다는 그의 주장마저 거짓이라며 야권은 몰아세웠다.

쿠르츠가 항변을 한 이유는 검찰 수사 대상이 돼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9년 국정 비리를 조사하는 의회 조사단 앞에서 위증을 한 혐의가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의회에서 선서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최고 징역 3년형에 처해진다. 쿠르츠는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유럽 언론들은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야권은 “기소되면 즉각 퇴진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2017년 만 31세에 총리에 취임한 쿠르츠는 젊은 리더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86㎝의 키에 셔츠 위 단추를 풀고 다니는 역동적인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 ‘정치권의 저스틴 비버’ ‘오스트리아판 마크롱’으로 불렸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인사 전횡을 했고, 이를 감추려고 거짓말한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쿠르츠의 위증 혐의 논란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의회 조사단 앞에서 그의 최측근 토마스 슈미트가 공기업 지주회사 수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오스트리아에는 ‘오바그’라는 지주회사가 11개 핵심 공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2018년 관련 경력이 전무한 슈미트가 오바그 최고경영자에 임명돼 스캔들이 시작됐다. 오바그 산하 기업의 정부 지분은 280억유로(약 38조원)에 달한다. 오바그 정관에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최고경영자를 선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검찰은 최근 쿠르츠의 위증 혐의와 관련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와츠앱 메신저 대화록이다. 쿠르츠가 오바그 수장으로 임명된 슈미트에게 “넌 원하는 걸 모두 가졌어”라고 하자, 슈미트는 “나 너무 행복해. 나는 총리를 사랑해”라고 답했다. 뚜렷한 물증이 나왔지만 쿠르츠는 “거짓말하지 않았다”며 우기고 있다. 게다가 쿠르츠는 “검찰의 수사 의도가 불순하다”고 주장해 법조계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쿠르츠는 정치 이력에 최연소 기록을 써내려가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22세에 중도 우파인 국민당의 빈 지역 청년위원장이 되자 대학(빈대학 법학과)을 중퇴하고 정치에 전념했다. 25세이던 2011년 정무차관에 임명됐다. 2013년 총선에서 27세에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그해 외무장관으로 발탁됐다.

장관이지만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다녔다. 암벽 등반과 산악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젊은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다. 18세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와 변함없이 교제하는 모습도 ‘젊지만 반듯하다’는 인상을 줬다. 2017년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당 대표를 맡아 ‘노인 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받던 당의 이미지를 바꾸고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권력을 쥔 이후 쿠르츠는 숱한 논란을 만들었다. 극우 성향인 자유당과 연정을 꾸린 쿠르츠는 반(反)난민을 강조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동조했다. 그래서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은 트럼프’로 불렸다. 게르만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쿠르츠는 이탈리아 북부 독일어권 주민들에게 국적을 주겠다고 해서 이탈리아와 외교 분쟁을 일으켰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쿠르츠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는 전담 사진가를 두고 있다. 그를 포함해 작가, 영상 제작자, 홍보 전문가 등 커뮤니케이션 팀에만 8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소셜 미디어 중독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폴란드·헝가리식 언론 통제에 나섰다. 친정부 매체에 정부 광고를 몰아줘 입맛에 맞는 기사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에 정부 광고용으로 4700만유로(약 640억원)를 집행했는데, 예전보다 3배 늘린 것이었다.

외무장관 시절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다닌 것도 ‘보여주기용 쇼’였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쿠르츠는 지난 3월 이스라엘에 갔다가 개인용 호화 제트기를 타고 돌아왔다. 이 비행기의 소유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며, 미국에서 조직 범죄에 연루돼 추방된 인물로 드러났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쿠르츠의 위증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게르만을 대표하는 젊은 스타 정치인으로 여겼던 독일인들이 충격을 표시하고 있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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