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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만물상] 입양이라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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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1년간 체류할 때 다니던 한인교회가 마련한 ‘한국인 입양의 날’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 함께한 파란 눈 호주인들이 한국 출신 입양 자녀를 품에 안고 “내 아들” “내 딸”이라며 이름을 소개했다. 어떤 부모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선물해 준 한국에 감사한다”며 아이와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했다. 이런 게 선진국이구나 싶었다. 흑인 아이 8명을 입양한 미국인 백인 부부 얘기를 외신에서 읽은 적도 있다. 인종이 다른 아이들과 가족을 꾸린 이유를 묻자 부부는 “사랑을 주고받으면 그게 가족이지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조선일보

만물상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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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는 대개 생후 100일쯤이면 부모를 알아보고 애착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옹알이를 하거나 눈을 맞추며 웃고 낯가림을 하는 모든 게 애착의 표현이다. 하지만 애착 관계가 꼭 피붙이 사이에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친부모와 떨어지게 되면 분리불안을 겪는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분리불안에 노출된 시간의 두 배 이상 사랑을 쏟으면 대개 상처를 극복하고 양부모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늦게 입양했다면 조금 더 기다리며 사랑을 주라는 뜻이다.

▶지난해 입양 건수가 492명(해외 입양 232건 포함)으로 통계를 작성한 1958년 이래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입양 관련 끔찍한 사건도 잇따라 터지며 애써 입양을 결심한 이들마저 주눅 들게 한다. 지난해 10월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엊그제 두 살 난 아이를 칭얼댄다고 주먹으로 때려 중태에 빠뜨린 양아빠가 구속됐다.

▶입양 가정 부모들은 입양이 부모 없는 아이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고 한다. 소설가 김이설의 단편 ‘오늘처럼 고요히’는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입양 이야기다. 소설에서 생리 우울증으로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던 여자가 엄마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는 소녀를 딸로 받아들인다. 엄마가 된 여자는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며 삶의 의욕을 되찾고, 엄마가 생긴 아이도 실어증을 극복한다.

▶13일 자 조선일보에 가슴으로 낳은 딸을 키우는 서울 강동구 조호재씨 가족 사연이 실렸다. 남매를 둔 부부는 3년 전 막내 성은이를 입양했다. 조씨 부부는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며 “성은이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만 선물인가. 잇단 입양아 학대 사건에 상처받았던 국민에게도 조씨 가족 사연은 선물이자 위안이었다. 성은이 가족이 오래 사랑하며 행복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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