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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루게릭 환자 안락사시킨 日의사, 10년전 父 살해 혐의로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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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환자 촉탁살인 혐의 체포 두 의사

10년 전 아버지 살해 관련 이메일 주고받아

"사는 게 고통이면 주사 한방으로 편히 해줘야"

'병사 꾸민 후 화장" 부친에 완전범죄 시도했나

일본에서 루게릭병을 앓는 여성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이른바 '안락사'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이 10년 전 두 사람 중 한 명의 아버지까지 살해한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중앙일보

일본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극약을 투여해 죽게 한 의사 오쿠보 요시카즈(가운데)가 지난해 7월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TV아사히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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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교토(京都)부 경찰본부는 지난 2019년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일명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해 사망하게 한 혐의(촉탁살인)로 지난해 8월 기소된 오쿠보 요시카즈(大久保愉一·43)와 야마모토 나오키(山本直樹·43) 등 의사 2명을 12일 살인 용의로 다시 체포했다.

10년 전인 2011년,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야마모토의 아버지를 약물 투여 등의 방법으로 살해한 혐의다. 이 살인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야마모토의 어머니도 같은 날 체포됐다.

경찰은 루게릭병 환자 '안락사' 사건과 관련해 의사 두 명의 온라인 기록을 조사하던 중 10년 전 두 사람 사이에 야마모토 용의자 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일이 오간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부 메일은 야마모토의 어머니도 공유했다.

당시 76세였던 야마모토의 아버지는 정신 질환으로 나가노(長野)현의 한 병원에 장기 입원한 상태였는데, 가족들의 요청으로 갑자기 퇴원한 날 집에서 사망했다. 병원을 나오기 전 야마모토의 아버지는 안정된 상태였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사전 계획에 따라 집에서 특정 약물을 투입해 살해한 후 병사(病死)로 보이도록 꾸몄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이번 사건이 일본에서 크게 화제가 된 건 두 용의자가 일본 내 '안락사' 논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인 오쿠보와 야마모토 용의자는 재작년 11월 루게릭병으로 사실상 전신마비 상태인 하야시 유리(林優里·당시 51세)에게 돈을 받고 교토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망자인 하야시는 죽기 전 자신의 트위터나 블로그에 "비참하다.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등의 글을 남기는 등 죽음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들은 하야시에게 150만엔(약 1540만원)을 입금받은 후 아파트로 찾아사 약물을 위에 투입해 약물 중독으로 사망케 했다.

일본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을 맞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일본에선 "본인이 죽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으면 들어주는 것이 좋다"며 두 의사의 범행을 지지하는 의견이 등장했으며, 환자의 뜻을 합법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안락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화장하는 순간 완전범죄 된다"



조사 과정에서 오쿠보와 야마모토 두 용의자가 오랜 기간 블로그 등에서 안락사를 옹호하는 주장을 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오쿠보는 의대 졸업 앨범의 장래 희망란에 '닥터 키리코'라고 적었으며 블로그엔 "'매일 살아있는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독약을 넣은 주사 한 방으로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닥터 키리코는 일본 의료만화 '블랙잭'에서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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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블랙잭'에서 약물로 죽음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하는 닥터 키리코.



두 용의자가 함께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처리가 곤란한 고령자를 죽이는 기술'이란 전자책에선 약물을 이용한 완전범죄의 가능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위화감이 없는 병사를 연출할 수 있다면 경찰이 나설 수 없고, 실제 검시관조차 범죄 여부를 간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화장이 시작되는 순간 완전범죄가 된다."

경찰에 따르면 10년 전 야마모토 아버지의 사망신고서에는 사인이 '병사 및 자연사'로 적혔다. 시신은 경찰의 확인이나 해부도 거치지 않은 채 화장됐다. 자신들이 구상해 온 '완전범죄'를 야마모토의 아버지에게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나 지나 관련 증거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혐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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