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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물건과 나를 연결하는 ‘리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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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소비 시대 잃어버린 ‘수선 문화’를 되살리자는 <리페어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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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현대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다. 공급이 소비를 창출한다. 감각적이고 멋진 디자인의 신제품, 욕구를 충족해주는 최신 가전제품, 고화질 카메라를 갖춘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사이, 내가 가진 물건은 너무 빨리 낡은 것이 돼버린다. 소비자가 취향이나 유행을 좇는 것을 그저 낭비벽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결함이나 고장으로 물건 전체를 쓸 수 없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컴퓨터·스마트폰·자동차부품 같은 정밀 기기뿐 아니라 토스터·헤어드라이어 같은 비교적 단순한 기계도 어떤 이유로 작동하지 않으면 쉽게 버리고 새것을 산다. 해진 장갑이나 구멍 난 양말은 말할 것도 없다. 옛날 같으면 동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선가게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지구 전체로 보면 자원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국립박물관장인 볼프강 헤클이 쓴 <리페어 컬처>(조연주 옮김, 양철북 펴냄)는 부제 그대로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고장 난 변기를 살펴보다 물이 내려가는 원리를 알아내고, 수영장 펌프가 고장 나자 단종된 제품인데다 부품을 구할 수도 없다는 전문가의 말을 뒤로한 채 물어물어 나사 하나를 구해 직접 고쳤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는 제조업체들이 물건을 만들 때 일부러 내구연한을 앞당기는 ‘의도적인 노후화’, 기술 진보에 따라 멀쩡한 이전 제품이 구닥다리가 되는 ‘기능적 노후화’가 공공연하다는 걸 간파한다. “정해진 시점이 지나면 마치 타이머라도 내장된 것인 양 작동을 멈춰버리곤 하는” 제품도 부지기수다. 요즘 휴대전화나 전동칫솔은 기기와 배터리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고장 나도 일부 부품의 수리나 교환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우리는 수명이 짧은 제품에 길든다.

지은이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고장 난 물건들을 고치면서 “수리하고 수선한다는 것은 새 물건을 살 때에는 얻을 수 없는, 그저 스패너를 돌리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것은 손(촉각)과 머리를 쓰고 발품을 파는 행위이며, “그 물건과 나를 곧장 연결”한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뛰어드는 행위이며 어떤 문제를 창의적으로 바로잡는 일”이며 “잠들어 있던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워준다”. 지은이의 생각은 수리·수선 메커니즘이 결함이나 오류로부터 개체를 보존하는 생명체 본연의 기능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데 “이를 경시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타고난 근본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성장의 쳇바퀴를 벗어나는 길은 ‘리페어 컬처’, 즉 수선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다. 지은이는 “리페어 컬처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서 시작해, 전체 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운동으로 퍼지는 것이 내 바람이며, 이제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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