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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한ㆍ일 이혼 상담사 또 나선 바이든, 文향해 3국 복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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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한·미정상회담 下]

바이든의 한ㆍ미ㆍ일 협력 타깃은 중국

'3국 정상급 협의체 복원' 제기할 듯

'전략적 모호성' 文 적극성이 관건

협력 차질시 한국에 책임소재 올 수도

“나는 헤어지려는 부부를 다시 붙여놓는 이혼 상담사와 같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인 2016년 8월 미 언론 더 아틀란틱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부부로 비유한 건 한국과 일본. 미국이 막후에서 2015년 12ㆍ28 위안부 합의 타결을 유도, 위태롭던 양국관계 회복의 단초를 만든 걸 이처럼 표현한 것이다.

5년여가 지나 대통령이 된 그는 또 이혼 상담사 역할을 맡게 됐다. 코로나19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하고,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등 동북아의 두 동맹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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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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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혼 상담 ‘시즌2’는 난도가 더 높다. 한ㆍ일 간 부부 관계는 더 나빠졌고, 중국이라는 제3자까지 끼어들며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21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ㆍ미ㆍ일 3각 협력 복원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은 이미 예열 작업 중이다. 지난달 2일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회의에 이어 지난달 29일엔 3국 합참의장이 만났다. 지난 5일엔 3국 외교장관 회의도 열렸다. 모두 3국 간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미국이 깔아놓은 판이다. 12일 한ㆍ미ㆍ일 정보기관장 간 비공개 접촉에 이어 다음달 4~5일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도 3국 국방장관이 만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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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 다키자와 히로아키(瀧澤裕昭) 일본 내각정보관, 박지원 한국 국가정보원장. 일본 언론은 한ㆍ미ㆍ일 정보기관장이 11일 오후 도쿄(東京)에서 회담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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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잦은 접촉에도 한ㆍ일 간 관계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3국 협력에도 좀처럼 불이 붙지 않는다. 배경은 구심력의 약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3각 협력의 주요 목표는 북핵 위협 대응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 없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을 한ㆍ미ㆍ일 3국 정상회의에 응하게 한 명분도 북핵 위협이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게 한ㆍ일 국장급 협의이고, 결과적으로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출발점이 됐다. 2016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며 3국은 대북 압박 강화로 더 똘똘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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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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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북한에 대한 접근법이 각기 다른 데다 바이든 행정부가 꾀하는 한ㆍ미ㆍ일 공조의 잠재적 타깃은 중국으로 볼 수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의 한 축은 한미·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ㆍ미ㆍ일 3각 협력이며, 다른 한 축은 쿼드(Quad, 미국ㆍ일본ㆍ인도ㆍ호주)”라며 “한ㆍ미ㆍ일 협력에서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는 종래보다 떨어졌으며 미국은 대중 정책의 큰 틀 속에서 북한을 다루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곧 미ㆍ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한ㆍ미ㆍ일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인이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 때도 한국을 3각 안보 협력에서 끌어내려는 중국의 공세는 치열했지만, 결국엔 북핵 대응을 중심으로 뭉치는 3국의 구심력이 중국이 조성하는 원심력보다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구심력이 원심력을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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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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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국을 향해 확인한 이른바 3불(不) 입장이 족쇄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로 인한 갈등 봉합을 위해 2017년 10·31 합의를 타결하며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 등 세 가지 입장을 공개 표명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후 중국은 한국 쪽에서 한ㆍ미ㆍ일 협력 강화 필요성을 공개 언급할 때마다 원론적 입장인 걸 알면서도 약속과 다르다는 식으로 불만을 표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빌미라도 잡은 듯 딴지를 거는 중국을 의식해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성한경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사드 보복 당시와 달리 지금의 중국은 미ㆍ중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에 일방적인 압박을 가할만한 여력이 없다"며 "한국이 한ㆍ미ㆍ일 협력과 같은 필수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 과도하게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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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국방부 영상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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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이 3국 안보 공조 복원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이 일본과 적극적 관계 개선에 나서지 못하고 대중 견제 전선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의 동맹 이탈을 방지하고 협력 의지를 확인하는 바로미터로 '사드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며 "현재 임시 배치 상태로 남아있는 사드의 정상기지화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가에선 이번에 미국이 한ㆍ미ㆍ일 정상회의 등 정상급 협의체 복원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다음달 11일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호기다. 3국 정상회의는 2017년 9월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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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오후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소재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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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에도 3국 간 안보 협력 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쿼드와 한ㆍ미ㆍ일 협력 등을 통한 대중 견제에 적극적이다. 3국 안보 협력 복원이 삐그덕거릴 때 책임 소재가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미국은 3각 협력 및 동맹의 고삐를 더 죄어 한국도 대중 압박에 동참하도록 압박할지, 혹은 3각 협력의 고리에서 한국이 이탈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관리에 그칠지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한ㆍ미 동맹과 미ㆍ일동맹의 층위를 달리 설정할 수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진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손을 놓아버린 가운데 일본이 미국 주도 대중 압박의 최전선에 나설 경우 동맹으로서 한국의 역할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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