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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톰 크루즈는 트로피 반납, NBC는 시상식 방송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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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78년만에 존폐 기로

인종 차별과 성희롱 논란, 부패 스캔들까지.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가는 영화상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가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할리우드와 미 방송계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불참(boycott) 운동으로 78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10일(현지 시각) 미 방송사 NBC는 내년에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NBC 방송은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NBC는 지난 1993년부터 30년 가까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했다. NBC가 한 해 지급하는 중계료만 6000만달러(약 670억원). HFPA의 현금 보유 자산(2019년 기준 5500만달러)보다 많기 때문에 재정적인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HFPA는 면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 단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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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스타들도 골든글로브 비판에 동참했다. 배우 톰 크루즈는 지금까지 세 차례 받은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모두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영화 ‘7월 4일생’과 ‘제리 맥과이어’로 두 차례 남우주연상, ‘매그놀리아’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배우들도 공개 비판 성명을 냈다. ‘블랙 위도우’ 역의 배우 스칼릿 조핸슨은 과거 HFPA 회원들로부터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았고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영화계 전체가 한 발짝 거리를 둘 때”라고 말했다. ‘헐크’ 역으로 친숙한 마크 러팔로 역시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자 일어서야 할 때”라는 성명을 냈다.

골든글로브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이 이번 보이콧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HFPA 회원은 고작 87명이 전부. 지난 2월 제78회 시상식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골든글로브의 부패 스캔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HFPA가 2019~2020년 협회 회원들에게 지급한 금액만 200만 달러(약 22억여원)에 이르며 윤리 규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에는 회원 30여 명이 패러마운트 영화사의 협찬으로 프랑스 파리로 호화 외유를 다녀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HFPA에 흑인 회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취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인종·성차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골든글로브의 공정성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선댄스 영화제 2관왕 등 각종 시상식에서 극찬을 받았던 영화 ‘미나리’를 작품·감독상 등 본상 부문에서 배제하고 외국어 영화상으로 분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를 비롯한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와 영화 홍보 대행사들도 잇따라 골든글로브 보이콧 방침을 밝혔다. 워너브러더스 등을 거느린 워너미디어 측은 이날 성명에서 골든글로브의 인종차별과 성차별, 동성애 혐오 논란 등을 지적하면서 “HFPA에 변화가 없으면, 기자회견을 포함해서 각종 행사 초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스튜디오,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과 협력하고 있는 100여 개 홍보대행사들도 골든글로브 보이콧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골든글로브의 부패 의혹과 불공정 논란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대적인 개혁 조치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불과 5~6년 전에는 후보와 수상자 대부분이 백인들로 채워져서 ‘너무나 하얀 오스카(#OscarsSoWhite)’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측은 투표권이 있는 소수 인종 회원의 비율을 8%(2015년)에서 16%(2018년)까지 늘렸다. 2019년에는 59국 출신의 영화 관계자 842명을 새 회원으로 위촉했다. 이 같은 아카데미의 쇄신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에 이어서 올해 배우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 같은 성과로 이어졌다.

골든글로브도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달 초 부랴부랴 개혁안을 발표했다. 1년 안에 회원 20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고 2년 내로 회원 숫자를 50%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혁신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할리우드 스타와 제작사, 방송사의 보이콧 선언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지 영화 매체인 스크린랜트는 “할리우드가 HFPA를 거부한다면 골든글로브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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