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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한삼희의 환경칼럼] 사람 사회가 나무숲 절반만 닮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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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분 넉넉한 나무가

배고픈 나무 돕고

나무끼리는 친족을

더 챙긴다는 연구 결과

연어도 새끼에 자기 몸 바쳐

자연의 신비로운 이타심

십여 일 전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수잰 시마드 교수 인터뷰가 실렸다. 몇 년 전 시마드의 테드닷컴 강연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가디언 인터뷰는 ‘엄마 나무를 찾아서’란 회고록 출간이 계기가 됐다. 책은 출간 일주일도 안 돼 아마존 ‘자연 보전’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조선일보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나무들끼리 땅 속 균사망을 통해 영양분을 주고받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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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드는 박사과정이던 1991년 특이한 실험을 했다. 숲 속 빈터에 자작나무와 전나무 묘목을 인접해 심은 후 각각을 투명 비닐봉투로 씌웠다. 주사기를 이용해 자작나무 비닐 속으로는 방사성 동위원소로 이뤄진 이산화탄소를, 전나무 쪽엔 안정된 성질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방사성 이산화탄소의 화학적 작용은 일반 이산화탄소와 완전히 같다. 다만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가이거 계수기로 성분 추적이 가능하다.

시마드는 전나무 묘목에는 빛이 닿지 않도록 검은 천막을 덮었다. 광합성을 못 하게 한 것이다. 그런 다음 1주일 뒤 찾아가 가이거 계수기를 갖다 댔더니 자작나무뿐 아니라 전나무에서도 ‘그~그~’ 하는 반응음이 나왔다. 자작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탄수화물 양분 일부가 전나무로도 건너간 것이다. 시마드는 “자작나무가 영양 결핍에 빠진 전나무에게 양분을 나눠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마드의 박사 논문은 1997년 네이처에 실렸다.

양분 전달이 가능한 것은 토양 속 곰팡이 균사(菌絲)가 두 나무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음식이 상할 때 보면 가느다란 곰팡이실(균사)이 수북이 쌓인다. 땅속에도 그런 균사가 가득 있다. 이것들이 모든 나무의 잔뿌리를 에워싸고 있다. 균사는 토양에서 질소, 인 등 영양 성분과 수분을 빨아들여 나무 뿌리에 공급해준다. 그 대가로 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 양분을 공급받는다. 공생(共生) 관계인 것이다. 이 균사 연결망을 통해 나무끼리도 양분을 주고받는다.

실험은 자작나무 잎이 무성한 여름철에 이뤄졌다. 가을철 자작나무가 잎을 떨군 다음 실험했을 때는 거꾸로 ‘전나무→자작나무’ 방향으로 양분이 전달됐다. 침엽수라서 여전히 잎을 달고 있는 전나무가 광합성을 멈춘 자작나무에게 양분을 줬다.

시마드의 연구는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발전했다. 뿌리가 넓고 깊게 뻗은 큰 나무가 숲 그늘에 가려 광합성에 애를 먹는 작은 나무들을 돌본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시마드는 큰 나무를 ‘중심 나무(Hub Tree)’, 또는 ‘엄마 나무(Mother Tree)’라고 불렀다. 중심 나무와 주변 수십~수백 개 작은 나무 사이의 얽힌 관계에 ‘나무 연결망(Wood Wide Web)’이란 이름도 붙였다. 시마드 연구팀은 나무가 친족을 알아본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중심 나무가 친족 나무들에게 훨씬 더 많은 양분을 나눠준다는 것이다. 시마드는 벌채하더라도 중심 나무는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중심 나무가 남아 있어야 새로 심은 묘목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마드 연구팀은 나무가 해충·병원균 공격을 받으면 그 정보를 땅속 연결망으로 전파해 이웃 나무들이 방어 물질을 생성하게 한다고 했다.

2006년 ‘연어가 안 오면 숲이 황폐해진다’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연어는 태평양 바다를 2~5년 누비다가 고향 하천으로 돌아가 알을 낳고는 죽는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연구해봤더니 연어 회귀 하천의 주변 나무가 연어 없는 하천보다 성장 속도가 세 배 빨랐다. 어미 연어가 죽으면서 몸에서 풀려나간 영양분이 주변 생태계를 풍성하게 먹여살리고 있었다.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어미 연어가 태평양에서 가지고 온 질소 성분을 추적해보면, 새끼 언어는 어미 연어의 몸에 있던 성분으로 자기 몸의 30%를 만들고 있었다. 시마드의 제자는 곰이 하천에서 포획한 연어를 큰 나무 밑에서 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곰이 먹다 남긴 연어 몸체의 부스러기들이 분해된 후 그 영양분이 균사 연결망을 통해 숲 전체로 확산된다는 연구 논문을 썼다.

시마드는 “나무는 지능과 감정을 가졌다”고 주장해왔다. 나무끼리 의사 소통을 하고, 서로 돌봐주고, 과거 경험을 통해 학습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학계에선 시마드가 비과학적으로 나무를 의인화(擬人化)한다며 거부감이 강하다고 한다. 양분이 고농도로 집적된 나무 쪽에서 저농도 나무로 흐르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돼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진화한 나무가 더 생존 능력을 갖기 때문에 자연선택된 것이지 나무가 무슨 의도나 목적을 갖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시마드 교수의 상상력 넘치는 설명에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연이 가장 풍성한 시기라서 그 신비로운 이타심(利他心)에 더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사람 사회가 나무 숲 생태의 절반만 닮았더라도 지금 같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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