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WHO] |
'임기를 연장하려면 중국 지지가 절대적이다' VS '대만 가입을 처리하면 중국 지지는 물거품된다'
4년 전 중국 지지에 힘입어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티켓을 거머쥔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가 정치적 수렁에 빠졌다.
오는 5월 말 개최되는 세계보건기구(WHO) 연차총회에서 새 WHO 사무총장을 뽑기 위한 안건과 대만의 WHO 옵서버 가입 문제가 동시에 논의되기 때문이다.
게브레예수스 현 사무총장은 연임을 노리는 상황으로, 만약 이번 총회에서 중국 눈치를 보다가 대만 문제를 소홀히 다룰 경우 국제사회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로 대만에 옵서버 자격을 부여하는 안건을 처리할 경우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중국에 '배신자'로 찍혀 연임이 어려워질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질 시비를 일으켰던 그의 친중(親中) 행보가 지금 스스로를 옭아매는 정치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매일경제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7일 사이 WHO 정회원인 콩고 등 4개국 정상과 연쇄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회 개최를 앞두고 시 주석이 주요 회원국들을 상대로 대만 옵서버 자격을 반대하라는 압박을 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 4년의 친중 이력, 올가미가 되다
오는 24일부터 일주일 간 진행되는 제74회 연차총회에서는 내년 5월 투표가 실시될 임기 5년의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대해 회원국 간 논의가 이뤄진다. WHO 사무국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등 WHO 회원국들은 오는 9월까지 새 사무총장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
이 후보자들을 상대로 내년 5월 제75차 연차총회에서 표결이 이뤄지는데 주목할 점은 게브레예수스 현 총장이 연임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달 초 로이터통신은 의학전문매체 스탯뉴스를 인용해 내년에 5년 임기가 끝나는 게브레예수스 총장이 두 번째 임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에티오피아 보건·외교장관을 지낸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2019년 말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한 뒤 눈에 띄는 친중 성향과 감염병 부실대응으로 입길에 올랐다.
취임 첫 해인 2017년 인권탄압과 부패의 상징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을 WHO 친선대사로 임명했다가 낮은 도덕적 기준으로 지탄을 받았다.
또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의 글로벌 팬데믹을 선언한 다음날 회원국들에 "WHO에 기부할 때 (각국이) 돈의 사용처를 특정하지 말아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감염병이 들불처럼 번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BTS 등 글로벌 유명인사들을 지목하고 손씻기 응원 챌린지를 요청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1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식회동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이틀 뒤인 1월 30일에서야 중국발 감염병에 대한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해 "역대 최악의 친중 사무총장"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중국 이익보호냐 VS 대만 존중이냐
"시진핑 국가주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경제 11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 6~7일 간 4개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했다. 대상국은 투르크메니스탄(1992년 WHO 가입), 콩고(1962년), 시에라리온(1961년), 쿠바(1950년) 등 모두 WHO 회원국들이다. 시 주석은 이들 국가 정상과 통화에서 이달 말 세계보건총회에서 대만의 옵서버 자격을 결사반대해줄 것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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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례총회 핵심 안건은 WHO 차기 총장을 뽑기 위한 각국의 후보 추천과 더불어 대만의 WHO 옵서버(의결권은 없지만 정책 논의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는 지위) 가입 여부다.
미국은 지난달 하원 외교위원회가 "다가오는 세계보건총회에서 대만이 참가해 (국제사회를) 도울 수 있도록 하자"는 성명을 낸 뒤 지난 7일 앤서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세계보건총회 때 대만을 옵서버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이달 초 영국에서 열린 G7(주요 7국)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대만의 옵서버 참여를 지지하는 내용이 코뮈니케에 포함됐다.
코뮈니케는 공동성명보다 낮은 합의 수준이지만 미래 G7 회원국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합의문 형태다. 세계 경제와 인권, 안보 등을 주도하는 G7 회원국들의 코뮈니케는 5월 말 세계보건총회에서 대만의 옵서버 참여를 결사반대하는 중국과 친중 국가 그룹에 포용과 양보를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만 1만2400자 분량이 이 커뮈니케에서 G7 회원국들은 대만의 참여를 지지하면서도 대만을 국가나 주권국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국제사회 '파트너' 등으로 에둘러 지칭했다.
WHO 내 기여금 지분이 막대한 G7 국가들이 대만의 옵서버 참여를 일치된 목소리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총회 개최 직전까지 주요 회원국들과 물밑교섭으로 이 안건의 공식 제안과 처리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는 중국이 이달 총회에서 대만 옵서버 안건의 채택과 통과가 유력시될 경우 총회 불참을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총회 개최를 앞에 두고 WHO는 최근 중국 시노팜이 만든 코로나19 백신의 긴급 사용승인을 결정했다.
이를 앞세워 중국이 총회 개최 직전까지 백신을 무상 공여하는 이른바 '시노팜 외교' 공세로 다른 나라들에 "대만의 옵서버 부여 안건을 거부해달라고"고 호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매일경제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주 6~7일에만 WHO 정회원인 콩고와 시에라리온 등 4개국 정상들과 연쇄 통화를 가졌다.
시 주석이 이틀 새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 정상들과 네 차례에 걸쳐 통화를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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