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사라진 휴대폰 1주일 지나 찾기 시작한 경찰, 수사 불신 키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민씨 부친, 아들 타살 의혹 제기

부모들 공감, 네티즌 수사대 가세

경찰 초동수사 미흡…검찰에 진정

양쪽 모두에 한 남지않을 수사해야



의대생 실종·사망 사건이 커진 세 가지 이유



중앙일보

고(故) 손정민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어버이날인 8일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앞에서 시민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고인가, 사건인가. 실족사인가, 타살인가. 미세먼지 안에 갇힌 듯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더욱이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 옆에 있었던 친구도 입을 닫았다. 지난달 24일 밤 11시부터 실종 당일(25일) 오전 2시~4시 30분까지 유일한 동행자였던 동급생 친구는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다고 유의미한 증거나 증언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피해자 부모는 애가 타고 속이 썩어들어간다. 경찰이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인(死因)을 밝혀내야 하는 이유다. 어느 쪽도 억울함으로 인한 한이 남아선 안된다. 중앙대 의대생 손정민(22)씨 죽음을 둘러싸고 증폭된 미스터리와 경찰 수사의 문제점 및 향후 방향을 추적했다.

어버이날(8일) 오후 3시 정민씨가 숨진채 발견됐던 반포 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앞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차종욱 민간구조사를 필두로 일반 시민들이 정민씨 대신 부친 손현(50)씨에게 카네이션과 선물·손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어린이날에 정민씨 발인이 끝나고 어버이날이 오자 힘내시라는 취지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손씨는 “결말이 날 때까지 버텨보겠다. 가혹한 진실이 될지, 끝없는 의문으로 갈지 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반포나들목 근처에선 지나가던 모녀가 손씨를 보고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울먹이며 “이웃 아파트에 사는데 힘 내라. 진실이 밝혀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실종 전날 친구와 함께 들러 술과 돗자리를 샀던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여기가 정민씨가 왔던 그 곳이냐”고 묻자 여직원이 힐끗 쳐다보더니 “네”라고 답하고는 이내 경계 모드로 돌입했다.

중앙일보

정민씨와 친구가 오간 반포나들목. 갈때는 둘이 갔으나 올때는 친구 혼자였다. 조강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두 사람이 머물렀던 공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술을 샀던 편의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뭘까. 첫째는 소탈했던 의대생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과 진상을 밝히려는 간절한 부성애가 결합한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손씨는 아들 실종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아들을 찾습니다’ ‘실종 5일째입니다’ 등의 글을, 사망 확인 후에는 ‘죄송합니다’ ‘국민 청원 및 변호사 선임’ ‘발인 그 후’ 등의 글을 이틀 간격으로 올렸다. 사망 경위가 석연치 않고 친구 가족의 행동이 뭔가 숨기는 듯 이상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시신에 깊이 팬 상처, 아들과 친구의 휴대전화가 바뀌고 친구의 아이폰이 사라진 점,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을 버린 의혹 등을 거론했다. 이들 글엔 최대 9999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전면 수사 촉구 글에는 10일 현재 38만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에는 “누가 들어도 이상한 친구의 진술, 그 친구는 조사하지 않고 목격자만 찾고있는 경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친구 부모 등을 철저히 조사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적혀 있다.

어버이날 꽃 전달식 직후 반포나들목 인근에서 만난 손씨에게 물었다.

Q : 아들 친구와 그 가족들의 어떤 행동이 미심쩍었나.

A : “실종 다음날(26일) 저녁 8시에 친구 집 앞에서 친구와 그 부모, 우리 부부가 5자 대면을 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달라고 호소하자 ‘술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만 했다. 자꾸 정민이가 가출이나 자살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얘기했다. 2시간 반 동안의 일에 대해 달랑 하나 얘기한 게 있다. 우리 아들이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신음 소리가 났다고 했다.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은 더러워져서 버렸다고 했다. 의문만 잔뜩 떠안고 돌아왔다.”

Q : 가장 아쉬운 점은.

A : “우리 집은 한강공원 코앞이라 뛰어가면 5분도 안 걸린다. 그날 오전 3시 30분에 친구가 부모에게 전화해 ‘정민이가 자고 있다’고 알렸을 때 우리 부부한테 전화 한 통화만 했더라도 정민이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3시 30분에 전화한 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Q : 현재 수사의 초점은.

A : “아들과 친구를 봤다는 서너명의 목격자를 만났다. 고성방가하는 두 남자라 기억이 난다고 했다. 뭐라더라. 진상, 약간 진상 짓을 했단다. 그들이 언제 둘을 목격하고 언제 한강공원을 떠났는지 타임라인을 그렸더니 오전 3시 30분 이후 걔네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건 오전 4시 30분에 반포나들목으로 나올 때까지 잤다는 친구의 증언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그 1시간 동안에 정민이가 어떤 일을 당했을 확률이 99%다. 그때 친구랑 같이 있었든지, 따로 있었든지 간에.”

중앙일보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가는 손현씨에게 일반 시민 모녀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조강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를 중심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사건 증폭의 계기가 됐다. 일부 네티즌 수사대들은 사건 현장이 찍힌 CCTV나 정민씨가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분석한뒤 추론 제공, 조언, 제보를 하며 힘을 보탰다.

예컨대 정민씨가 실종 당일 오전 1시 56분에 39초 동안 찍은 마지막 동영상에는 친구가 큰 절을 하듯 엎드려 있고 ‘골든 건은 네가 잘못했어’ ‘골든 건은 어쩔 수 없어’라는 대화가 나온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골든 건은 의대에서 시험지 받자마자 답안지 제출하고 바로나가는 시험포기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골든 건은 커닝행위다” 등의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경찰은 ‘골든’은 가수 지소울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했다. 제이팍, 레이블 등 힙합 용어들이 나온 걸로 봐서 공통 관심사를 얘기한 것 같다는 것이다. 친구가 잃어버린 휴대전화의 색상이 빨간색인지, 회색인지를 두고도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도 일이 커진 원인 중 하나다. 유가족은 경찰이 초동 수사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판단했다. 사라진 휴대폰을 1주일이 지나서야 찾기 시작한 점, ‘정민씨 후두부 상처가 물길에 부딪혀 난 것 같다’는 예단을 발표해 수사 방향에 영향을 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손씨는 “이런 정황을 보고 있으면 경찰이 정말 단순 익사로 처리해 버리려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손씨가 검찰에 진정서를 낸 이유다.

한 네티즌 수사대는 “진실은 휴대폰과 버려진 신발에 있을 텐데. 정황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증거는 시간이 갈수록 인멸되고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모욕죄로 고소한 분에 대해선 3개월간 핸드폰 압수, 포렌식하고 1년간 쫓아다니면서 경범죄 신고하며 괴롭혔다는데 그 십분의 일만 해도 벌써 진실 드러났겠다”고 썼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종류의 실종 사건에선 초기부터 강제수사를 할 수 있게 예외규정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곤 서초서 형사과장은 10일 “실종 단계에선 생존 여부를, 수사 단계에선 사인(死因)을 조사하는 것이라 업무가 다르다”며 “어제 정민씨 친구와 친구 아버지를 분리 조사하는 등 유족들이 제기한 문제를 하나씩 꼼꼼히 확인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법최면 조사’ 때 친구 측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동한 것을 두고 유족 측이 뭔가 실수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한다고 전하자 김 과장은 “최면 수사를 한다고 하니 대응차 선임한 것으로 안다. 유족 측이 경찰과의 소통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 것과 비슷한 취지로 안다”고 말했다. 서초서는 최근까지 정민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사실 외에 수사 관련해선 함구하고 있다. 친구 측의 기본 입장은 일체의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정민씨 시신이 발견된 수상택시승강장 주변에서 경찰이 휴대폰 등을 찾으려 수색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직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을 풀어준 사건 중에 대표적인 게 2010년 12월 미국에서 발생했던 배우 이상희씨(영화 ‘추격자’‘도가니’ 등 출연)아들 진수 군(당시 19세) 피살사건”이라며 “정민씨 사건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이 남지 않게 수사가 깔끔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재학생과 다투다 주먹을 맞고 쓰러져 숨졌다. 치명상이 아닌데 사망했다. 미국 현지 수사기관이 정당방위로 판단, 불기소 처분하자 이씨 부부는 국내에서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때 아들을 묻었던 관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갖다놓고 300여 일간 1인 시위를 했다. 이른바 ‘관 시위’다. 국과수의 재부검을 거쳐 청주지검이 폭행 치사 혐의로 가해자를 불구속 기소했고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다.

중앙일보

미국 유학 간 아들을 폭력에 잃은 이상희씨. 관 시위 끝에 가해자는 처벌됐다. 출처=굿모닝충청



정민씨 사건의 국과수 부검 결과는 이달 중순께 나온다. 그게 비극의 끝일지, 또다른 시작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차가운 강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날의 진실을.

조강수 논설위원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