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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협치 중시한 현대 정치의 거목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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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前 국무총리 별세

인사청문회 제도 통한 최초 총리

‘3김 시대’ 여야 넘어 통합 추구

정치권 “통 큰 정치 보여준 거목

정도의 정치 잊지 않을 것” 추모

세계일보

빈소 찾은 김부겸 총리 후보자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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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 시대’라 불렸던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거물 정치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지난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는 1934년 경기 포천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법조인 경력을 쌓았다. 제5공화국 초기이던 1981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11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기 연천·포천·가평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 16대 총선까지 내리 6선을 했다.

민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한 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자유민주연합 등으로 당적을 옮기며 정치적 격랑을 헤쳐나갔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원내총무를 맡을 정도로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노태우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김대중정부에서는 2년 2개월간 국무총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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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당시 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한동 상임고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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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6일 당시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이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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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당시 ‘9룡’으로 불리던 대선주자 9명 중 이회창·이인제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2002년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다시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각각 지지해 당선에 힘을 보탰다.

율사 출신답게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면서도 호탕한 성격으로 친화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처럼 여야를 뛰어넘어 통합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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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8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 조문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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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통 큰 정치를 보여준 ‘거목’ 이 전 총리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살아 있는 정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우리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정도의 정치를 위해 온 힘을 다하셨던 모습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9일 건국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도 정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전 총리를 조문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치에서 통합의 큰 흔적을 남기고 지도력을 발휘한 이 전 총리님을 기리고,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 전해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민심을 수습하고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공직자로서도 그렇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추모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으로 여야 간, 보수와 진보 간 소통과 통합을 위해 노력해주셨다”고 했다.

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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