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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방관자 아닌 친구 방어자 될래요”…달라진 학폭 예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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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별 1회 수업 의무화’ 이후 초등학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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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속 따돌림 장면 나오자 “행동하겠다” 동참 잇따라
강사 “방관 안 된다는 상식 실천 위한 용기 찾는 게 중요”

올 초 연예계와 체육계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폭로가 잇따랐다. 어김없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가해자 처벌은 사후적인 조치다. 국회는 지난 10년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11차례 개정하며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처벌 조치를 강화해 왔지만 학교폭력은 크게 줄지 않았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2019년(1.6%)까지 학교폭력은 2년 연속 피해 응답률이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피해 응답률이 0.7%포인트 하락한 0.9%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수업이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전히 초·중·고등학생 100명 중 1명은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에게 집중하는 학교폭력예방수업이 있다. 김운화 굿네이버스 학교폭력예방교육 강사는 지난 8년간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하며 ‘학교폭력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학교폭력을 당하면 바로 선생님께 말해야 한다’보다 ‘방관자가 되지 말고 친구를 지키는 방어자가 되자’고 말해왔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도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 김 강사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영주’와 따돌림을 주도하는 ‘지혜’, 그를 지켜보는 ‘혜선’이 등장하는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그는 영주나 지혜가 아닌 혜선에 대해 물었다. “여러분이 혜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교실에 있는 28명의 학생 중 20명이 ‘영주를 위해 행동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유를 묻자 “방관자가 되니까요” “말해도 선생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고통당하는 영주의 두려운 마음을 알 것 같아서요”라는 답이 나왔다. 반 친구들의 발표에 힘입어 그간 겪은 학교폭력 경험을 털어놓는 학생들도 있었다. 김강민군(10·가명)은 “1학년 때 제가 말할 때마다 애들이 따돌렸어요. 많이 힘들고 다들 왜 나한테만 그럴까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먼저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학생들은 그가 말할 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강사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를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 학기 1회 학교폭력예방교육이 의무화되면서 학생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다. 그러나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푸른나무재단의 2021년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응답한 초·중·고등학생 6230명 중 1007명(16.2%)이 ‘학교폭력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중 391명(26.7%)이 ‘모른 척했다’고 답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렸다’는 응답(275명, 18.8%)보다 많았다. 교육부 조사에서도 2019년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 10명 중 3명은 ‘보고도 모른 척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강사는 “학교폭력은 몰라서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하는 것”이라며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실천하기 위해 공감과 용기를 끌어내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업을 마치며 김 강사는 앞으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 어떻게 할 것인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나뭇잎 모양 포스트잇에 적어서 칠판에 붙였다. ‘학교폭력, 우리의 용감함을 보여주자’라고 적힌 나무에는 28개의 나뭇잎이 붙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괜찮아?’라고 물어보고 무섭더라도 싸움을 막고 선생님께 말하고 친구들에게도 진실을 말할 것이다.” “괜찮아.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야. 넌 더 좋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줄 거다.” “먼저 학용품을 빌려주고, 간식을 나눠먹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으면 도와주겠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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