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전 국무총리(사진)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6선 의원과 내무부 장관, '당 3역'인 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을 비롯해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한국 정치사의 거목 중 한 사람이다. 경기 포천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서울지법 판사와 서울지검 검사를 거쳤다. 판사에서 검사로 전관한 국내 최초 사례로 알려졌다.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뒤 16대까지 내리 6선을 기록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이한동 총무학'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 당시 '9룡(龍)' 중 한 명이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DJ)정부에서는 김종필·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세 번째로 총리직을 맡기도 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총리였다.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하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슬하에 지원·용모(건국대 교수)·정원 씨(고려사이버대 교수) 1남2녀를 뒀다. 두 사위는 허태수 GS그룹 회장과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이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1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초당적 협력과 협치를 중시했던 의회주의자이자 통 큰 정치를 보여준 거목"이라고 밝혔으며 국민의힘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의회주의자"라고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문재용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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