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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로터리]농업 유전자원 주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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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웅 농촌진흥청장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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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노벨평화상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 혼란에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며 “세계식량계획은 기아 퇴치와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가장 인도주의적인 기관”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전염병에 대응하는 동시에 기아 대유행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일깨웠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선언되자 유럽 여러 국가들은 국경 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는 국가 간 물류 단절로 이어졌고 국제 물류 시스템의 위축은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식량 안보’는 희미한 관념이 아니라 인류 생존과 직결된 위기임을 실감하게 했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19년 기준 2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쌀을 제외하고 밀(0.5%)과 옥수수(0.7%), 대두(6.6%)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미미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주요 농산물 수출 국가의 수출 제한 조치가 재연·확대된다면 식량 안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했다.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의 근간은 종자다. 2010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온 세계 종자 산업은 2019년 554억 달러에서 오는 2025년 860억 달러까지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종자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주요국 거대 기업들의 독과점은 심화되는 추세다. 최근 글로벌 종자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돼 미국·중국·독일 등 3개국 기업이 전체 종자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정 국가, 특정 기업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은 일찌감치 우수한 품종의 원천 재료인 유전자원을 확보하며 종자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유전자원이 지닌 무한한 경제적 가치를 늦게나마 인식한 세계 각국은 생물자원 이용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공정한 공유에 대한 지침을 담은 국제 협약(나고야 의정서)을 맺었다. 유전자원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해 이용하되, 자원을 제공하는 나라의 이익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내는 원천 재료, 유전자원 확보와 활용을 향한 무한 경쟁 체제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중국·인도·러시아에 이은 세계 5위의 농업 식물 유전자원 보유국이다. 농촌진흥청의 농업 유전자원센터는 농업 식물 3,083종의 26만 6,649자원(2021년 1월 1일 기준)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국내 수집은 물론, 해외로 유출된 국내 자원을 돌려받고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외국 자원도 지속적으로 도입해온 성과다. 농업 유전자원센터에서 보존·관리중인 유전자원은 무상 분양되고 있다. 지난해는 그간 분양된 자원을 이용해 개발한 새로운 품종 111개가 등록됐다.

식물 유전자원이 연구·산업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려면 실물 자원 보존뿐 아니라 유전체의 디지털 빅데이터가 확보돼야 한다. 최근 바이오산업의 핵심인 토종 식물자원 생명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관계 부처 간 협력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제·생태적 가치가 높은 토종 식물의 유전체 빅데이터가 확보되면 고부가 기능성 물질 유전자 탐색과 바이오 소재 발굴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유전자원을 가지는 것은 기후변화와 병충해·전염병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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