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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유족들 "고인 뜻 받들겠다"…이건희 유산 '국민의 컬렉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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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家 통큰 사회환원 / 컬렉션 2만3000점 기증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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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는 국보와 보물의 상속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초일류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해 국가 문화유산으로 남기려고 애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문화보국(文化保國)'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40여 년간 소장품 1만3000여 건을 꾸준히 구입했을 뿐 단 한 번도 팔지 않았다. 1980~1990년대에는 심혈을 기울여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추진해 국보급 문화재 160여 건을 소장하게 됐다.

28일 유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생전에 국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세계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주요 작가의 대표작이 한국에 있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문화재와 미술품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이 회장은 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식에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연설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고인 바람대로 국가지정문화재와 예술성·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기관에 기증해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고 온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997년 에세이집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자라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1998년 3월 삼성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통해서는 "삼성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룬 성과를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번 기증품의 시가감정가는 2조원대로 나왔지만 국보와 보물임을 감안하면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컬렉션'이다. 고인은 그것이 애초에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미술사적 가치를 우선해 모았던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세계적인 서양 작가들의 유명 작품과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미술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각각 기증한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진경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를 비롯해 국내 유일의 고려 천수관음 불화인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제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 외에도 도자기, 서화, 금속공예 등 다양한 시대 고미술품 9797건(2만1600여 점)이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존 소장품 40만여 점(기증품 2만8657점), 올해 소장품 구입 예산 39억7000만원(전체 예산 512억원)을 감안하면 사상 최대 규모 기증이다. 오는 6월부터 기증받은 컬렉션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증한 뜻을 잘 받들어 지역문화 활성화, 국위 선양을 위한 우리 문화재 해외 전시 등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 '황소', 장욱진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작품과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 '구성',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작품 등 총 1226건(1488점)을 기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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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


그동안 소장품에서 빠져 있던 핵심 작가들의 작품을 채운 국립현대미술관은 '피카소 작품 1점 없는 미술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세계적 미술관으로 도약하게 된다. 오는 8월부터 전시하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우리 생애에 이런 기증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엄청난 정성과 열정, 시간이 없으면 그 많은 작품을 모을 수 없으며 기증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유족들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지방 미술관 5곳과 서울대 등에도 유명 작품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이번 기증은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대 최대 규모로, 한국 박물관·미술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세기의 기증'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대지와 미술품을 기증한 미국 재벌 록펠러 가문,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을 지은 석유 재벌 폴 게티,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대규모 미술품을 기증한 금융 재벌 존 피어폰트 모건 가문 등에 버금가는 기부로 평가 받는다. 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한국 메세나 역사에도 새 이정표를 세웠다. 김희근 한국메세나협회장(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은 "사회적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기증"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기증으로 우리나라도 이제 외국과 비교해 손색없는 미술관과 박물관 모양을 비로소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기증으로 물납제가 전격 도입될 가능성에 대해 "문체부 입장에선 물납제 도입 관련 법안이 통과돼 국민에게 문화적 가치가 높은 예술품을 향유할 기회가 제공됐으면 한다"며 "재정당국과 계속해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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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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