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의 정상회담에서 푸대접을 받은 우르즐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여성 차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7일 EU-터키 정상회담에서 벌어진 이른바 ‘소파게이트’를 꺼내 들면서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맨 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6일 터키에서 열린 EU·터키 정상회담에서 의자가 없어 서 있는 모습.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 터키 대통령과 샤를 미셸(가운데)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준비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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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소파게이트를 거론하며 핵심은 ‘외교 결례’가 아닌 우리 주변에 만연한 ‘여성 차별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그는 “나는 EU 집행위의 첫 여성 위원장이다. 내 자격에 걸맞게 대우받길 원했다. 하지만 2주 전 터키를 방문했을 때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심한 듯 “유럽 조약에서 내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는지 정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내가 수트 차림에, 넥타이를 맸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느꼈던 감정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나는 여자로서 그리고 유럽인으로서 상처받았고, 외로움을 느꼈다”면서 “좌석 배치나 의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여성) 존재 가치에 미치는 사건이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6일(현지시간) 우르즐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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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여성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계 기구의 리더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특권층인 나도 이런 경험을 했다”며 “무관심 속에 힘없이 차별당하는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여성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온 EU와 터키는 지난 6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좌석 배치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각각 상석에 나란히 마주 보며 앉았다. 반면 뒤따라 들어온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상석에 따로 의자가 제공되지 않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6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열린 터키-EU 정상회담에서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맨 왼쪽)은 외교 의전상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맨 오른쪽)과 마주 앉았다. [신화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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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터키 측은 끝까지 의자를 가져다주지 않았고,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아래편 소파에 떨어져 앉아야 했다. EU 집행위원장은 외교 의전상 국가 정상 대우를 받아야 했지만, 결국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터키 외무장관과 마주 앉는 형태가 됐다.
영상이 공개되자 유럽권에서는 터키가 의도적으로 여성인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을 모욕하고, '외교 결례'를 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럽 주요 언론은 이 상황을 '소파 게이트(sofagate)'로 칭했다. 터키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이스탄불 협약 탈퇴를 두고 국제적 비판에 직면하자, 불편한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이나 미셸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터키가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하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면서 “앞으로 여성 폭력을 보호하는 것이 EU집행위의 '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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