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층에서 바라본 여의도 시범 아파트 전경.[사진 출처 = 하서빈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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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는 한달 간격으로 필터를 안갈아주면 빨간 녹물이 나와요. 지금 여의도 시범 아파트 사람들은 녹물먹고 살고 있어요. 재건축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재건축만 기다리고 있어요."
20년동안 여의도 시범 아파트에 거주한 60대 주민은 시범 아파트 재건축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한숨과 함께 푸념을 늘어놨다. 이 아파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콕 집어 꼭 한번 방문하시라고 언급한 곳이다. 재건축이 꼭 필요한 곳도 있는데 집갑 상승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각종 규제에 막혀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기자가 지난 22일 실제로 찾아간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시범아파트는 1971년에 준공돼 여의도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8년 '여의도 통개발'을 추진하다 집값이 폭등하자 계획이 보류됐다. 이후 시범아파트의 재건축도 난항을 겪게 됐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 내부 계단 벽 페인트 칠은 다 벗겨지고, 곰팡이가 슬어있다.[사진 출처 = 하서빈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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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물 때문에 정수기 필터 매달 교체해요"
22일 오후 택시에서 여의도 시범 아파트 앞을 내리자마자 목격한 아파트에서 낡다 못해 근현대 문화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파트 입구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주차장 안내판은 녹슬어있고 '주차장 입구'란 빨간색 페인트칠은 거의 지워져 읽기도 힘들었다.
주차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주차장이 부족해 화단을 잘라 주차공간을 마련했다는데, 자갈밭 위에 어지럽게 주차된 차들 사이를 빠져나오는데 곤욕을 치르는 운전자도 있었다.
아파트 안에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는 벽의 페인트들은 벗겨져 곰팡이들이 붙어있었다. 12층으로 올라가보니 군데군데 철심이 드러나 있는 아파트 난간은 언뜻 보기에도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다.
이날 만난 시범 아파트 주민 A씨(63)는 "외관도 그렇지만 내부는 더 곪을대로 곪았다. 여기는 보일러용으로 쇠파이프를 쓰는데 파이프 안으로 녹물이 들어가 터질 땐 아랫집 수리 공사를 대신 해줘야 한다"며 "정수기에서도 녹물이 끊임없이 나와 한달마다 필터를 교체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아니면 빨간 녹물을 마셔야 한다"고 토로했다.
50대 주민 B씨 역시 "주차장도 다 실외에 있어서 너무 불편하다"며 "주차장이 부족하니까 화단을 잘라내서 주차장으로 만들었는데 아파트에 녹지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가 전반적으로 아파트가 노후됐다지만 시범 아파트가 제일 오래되고 가장 노후됐다"고 했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 주차장 전경.[사진 출처 = 하서빈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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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당선 이후 재건축 기대감 ↑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인해 주민들의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아파트 주민 C씨(48)는 "아파트가 너무 노후돼 잔공사가 많은데, 그 많은 잔공사들을 개인이 전부 할 수 없다"며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해줘야 한다. 박 전 시장 시절에는 우리 아파트가 재건축이 매번 무산됐는데, 오 시장이 빨리 재건축을 시원하게 추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형 여의도 시범아파트 정비사업위원장도 "아파트가 51년이 지나니까 안전사고 위험이 너무 높고, 시민 생명에 위협이 된다"며 "오 시장이 아파트 단지에 방문해서 사정을 살펴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기 때문에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 당선 이후 근처 부동산에도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워낙 여의도는 매매가 원래 잘 안이뤄지는 곳이라 매매는 예나 지금이나 없는 건 같다"며 "다만 최근 일주일 사이 시범 아파트 분위기 등을 문의하는 전화가 평소보다 몇 통 더 오기도 했다. 다만 거래가 성사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 기대감이 올라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기대 심리가 충분히 반영되면 여의도는 워낙 공급이 적어 앞으로 매매를 할 때 신고가는 계속 나올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 내부 벽 곳곳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다.[사진 출처 = 하서빈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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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재건축 신호탄...반발 적어
서울시는 이처럼 커지는 재건축 기대감에 따른 집 값 상승을 잡기 위해 지난 21일 압구정아파트(24개 단지)와 여의도아파트 지구 및 인근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4곳 4.57㎢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안이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주택(18㎡ 초과)과 상가(20㎡ 초과) 거래시 해당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매매 뒤에는 2년간 실사용을 해야 한다.
주민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발표에 '안심'이라는 반응이다.
아파트 주민 D씨는 "지금까지 재건축 관련 정책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때문에 실패한 것 아니냐"면서 "그래도 이번에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줘서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E씨 역시 "집값 안정화에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여의도는 원래부터 타지역에비해 매매건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매매는 평상시하고 비슷하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서 집 값을 잡아줘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9단지 전경.[사진 출처 = 이상현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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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도 화색..."이번엔 재건축되나 보다"
여의도와 마찬가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도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각각 작년과 올해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목동 9단지와 목동 11단지에서도 재건축 기대감에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 지정을 반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50대 목동 9단지 주민은 "재건축을 추진하면 집값이 오를 수 있으니까 오세훈 시장이 먼저 토지거래허가제를 시행해서 매매를 못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나"라며 "즉 집값이 못 오르게 선제 조치를 한 뒤에 재건축을 허락해주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40대 목동 신시가지 9단지 주민은 "6단지 재건축 확정된 것 보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며 "겉모양만 아파트지, 안에 들어가면 말도 못한다. 주민들끼리 동네에서 얘기해보면 물 새어 나오고, 화장실에서 녹물 나와서 업자 불러 뜯어봤다는 집도 있다"고 털아놨다.
이종헌 목동 9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지거래허가지정 등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시하는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옳다고 판단한다"며 "서울시가 후속 정책도 잘 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매경닷컴 기자 1derlan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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