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엄두 안 나고 주식 정체
‘빚투’ 열풍, 가상통화 시장 이동
1분기 신규 투자자의 60% 차지
암호화폐 비트코인 이미지. 로이터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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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 허모씨(36)는 최근 오랜 취미인 게임을 그만뒀다. 두 달 전부터 게임보다 짜릿한 가상통화 거래에 빠졌기 때문이다. 3년 전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가상통화)의 일종인 리플에 투자했다 폭락한 뒤 ‘코인’을 잊고 있었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트코인이 급등하는 것을 보고 계좌를 되살렸다.
허씨는 지난 2월 컴퓨터 3대를 동원해 채굴부터 시작했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15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4월에는 이더리움 가격이 2배로 뛰면서 300만원으로 수익이 늘었다. 가상통화 거래를 시작한 건 지난달부터다. 허씨는 “밥 먹기 전 300만원을 넣고 밥 먹은 후 1%가 오르면 곧바로 파는 식이었다”면서 “그런 식으로 수수료를 제외하고 한 번에 2만~3만원을 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과 달리 가상통화 시장은 24시간 거래가 이뤄진다.
그는 “가장 많이 했던 날은 매수와 매도를 합쳐 하루에 80번을 거래한 적도 있다”면서 “지금은 코인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다시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씨는 보유하고 있던 국내주식을 처분한 돈과 신용대출을 합쳐 3000만원을 가상통화에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해외주식은 유지하더라도 국내주식 투자는 그만둘 생각이다. 그는 “연구실에 함께 있는 대학원생 20여명도 모두 코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에 ‘코인’ 열풍이 불면서 20~30대가 주식시장을 떠나 가상통화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변동성 높은 가상통화 시장으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받은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주요 4대 거래소 투자자 현황을 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는 모두 249만5289명이다. 이 가운데 20대가 32.7%(81만6039명)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30.8%(76만8775명)로 집계됐다. 신규 가입자 10명 중 6명은 ‘2030세대’인 것이다. 40대는 19.1%(47만5649명), 50대는 8.8%(21만9665명)에 그쳤다.
“젊은층 미래 불안·초조감이 코인 열풍 만들어”
몇 원짜리부터 몇 천만원까지 비트코인 국내 가격이 개당 6800만원대로 하락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현황판에 가상통화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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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에 빠진 2030
“1천만원이 1억5천만원 돼”
큰 변동성, 위험이자 ‘강점’
주식과 달리 24시간 거래
개인 업무에도 지장 없어
투자은행 진입에 ‘신뢰 ↑’
안정적 노후자산 인식도
20대 예치금은 지난 1월 346억원에서 지난달 881억원으로 154.7%, 30대 예치금은 같은 기간 846억원에서 1919억원으로 126.7% 각각 증가했다.
치솟은 부동산 가격, 최대 수천%에 이르는 가상통화 가격의 급등, ‘나만 빼고 다 코인 하나’라는 불안심리, 지난 1월 고점을 경신한 후 횡보를 거듭해온 주식시장의 정체 등이 ‘2030 코인 열풍’의 배경으로 꼽힌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동산은 너무 많이 올랐고 주식도 오를 만큼 올라 수익률에 대한 기대가 없는 반면 주변에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은 아주 많아졌다”면서 “ ‘나만 돈을 못 번다’는 초조함과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2030세대를 가상통화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코인 투자자들은 가상통화의 높은 변동성을 ‘리스크’라기보다는 ‘투자의 강점’으로 보는 듯했다. 3월 말부터 가상통화 투자를 시작했다는 한 30대 정보기술(IT) 업체 직원은 “한 동료가 1000만원을 넣어서 1억5000만원을 버는 걸 봤다”면서 “주식은 변화가 별로 없는데 코인은 많이 움직여서 100~200% 수익률이 흔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과 비교해 현금화가 빠르고 거래 시간 제한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20대 조모씨는 “주식은 종잣돈이 커야 하고 매매 후 입금까지 이틀이 더 걸리는데 코인은 바로 가능하다”면서 “일하는 시간 때문에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30분에 끝나는 주식시장을 계속 들여다볼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가상통화 거래와 관련된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 20일 오전 7300만원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오후 한때 6500만원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정부의 엄단 방침에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을 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조모씨(34)는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면서 “정부가 가상자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걷겠다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여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기 대상으로만 알려졌던 가상통화에 대한 신뢰는 단단해졌다. 직장인 박모씨(37)는 “정부나 중앙은행에서 내재가치가 없다, 투기다라고 하지만, 투자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달러 같은 건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데 비트코인은 채굴량이 정해져 있어서 신뢰가 쌓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올해 초 비트코인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 업계 종사자 손모씨(38)는 “최근에는 투자은행들도 가상통화 시장에 들어오고 있어서 하나의 자산으로서 신뢰가 쌓였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단타를 노리는 불나방도 많지만,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많이 낮아진 건 사실이고 안정적 노후자산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통화의 변동성이 너무 크고 실체가 복잡해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증권거래소와 달리 가상통화 거래소는 거래 자체를 모니터링하지 않고 시세조작이 있더라도 잡을 수가 없다”면서 “시장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항상 가져야 하고, 투자 실패는 자기책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 연구센터장은 “성숙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면서 “일확천금을 번다는 생각을 버리고 초기에는 대장주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으로 차츰 투자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이윤주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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