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도적인 국가권력 행사의 책임을 지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명령할 수 있는가. 1심 법원이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과 석달 사이에 상반된 판결을 내놓으면서 같은 질문에 대한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용수 할머니,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2차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끝내는 것이다. 한 국가의 행위는 다른 나라의 사법권 관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국제관습법상 규범인 ‘국가면제 이론’이 재판부가 소송을 각하한 핵심적 이유였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과 달리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 선고와 강제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법원이 추상적으로 국가면제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 구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해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법원은 3개월 전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정반대의 판결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1차 소송)에서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은 반인도적 범죄행위”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국내 법원이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한 첫 사례였다. 이 판결은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1차 소송은 할머니들이 201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으나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자 2016년 1월부터 정식 소송 절차에 들어가며 시작됐다. 이 할머니 등은 이를 본 뒤 2016년 12월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론을 이유로 두 소송 모두 응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위안소 운영과 위안부 모집·강요 등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는 국가면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차 소송은 일부 원고들의 항소 가능성이 높아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날 수 있다. 그렇다고 1차 소송의 원고들이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의 효력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민사소송의 효력은 해당 재판의 당사자 사이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판결을 집행할 방법은 없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달 29일 1차 소송 판결의 강제집행을 위해 국내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두번째 판결이 법조계 다수 의견에 더 가깝다”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열 연세대 교수는 “판결로 역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외교적 지혜와 합의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결론이 나온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입장 발표를 하고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이날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각하 판결을 선고했다. /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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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전현진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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