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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낭보' 줄잇는 韓조선업…일감은 따냈는데, 실속은 챙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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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22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HMM 컨테이너선 '가온호' 명명식에서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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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전 세계 발주량 1025만 CGT(표준선 환산톤수) 중 532만 CGT(119억 달러)를 수주해 2021년 1분기에 전 세계 1위 수주량을 달성했다. 이번 성과는 전년 동기 대비 923%, 2019년 대비 157% 증가한 실적이다. 조선 호황기(2006~2008년) 이후 13년 만에 1분기 최대 수주량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4일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이다. 수치만 보면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 등 조선업은 완연한 ‘봄날’을 맞았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에 따른 불황을 이겨내고 연일 수주 릴레이를 펼치면서다. 이상준 산업부 조선해양플랜트과장은 “코로나19, 유가 하락 등으로 침체한 국내 조선 산업이 점차 회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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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 펴는 한국 조선업 수주 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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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일감을 따내면 좋은 일이다. 더구나 전세계 조선업은 수요가 줄고 공급은 늘어나는 공급 과잉 상황이다. 잇따라 ‘싹쓸이 수주’에 나선 건 기술력, 영업 경쟁력을 인증받았다는 의미다. 마침 선박값도 오르는 추세다. 조선업이 바닥을 치고 오를 일만 남았다는 낙관론이 나온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지난해 4분기 신규 수주 급증으로 올 1분기 수주가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상과 달리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현재로썬 위험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건강한’ 수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일단 따내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수주’라면 경기 불황기 독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조선업체가 일단 저가에 수주한 뒤 납품업체 단가를 후려쳐 이익을 맞추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호황기와 비교하면 선박값이 여전히 낮다”며 “수주량이 늘었지만 아무래도 초기엔 저가로 수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조선업계 성과를 출혈 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라고 낮춰보지 않았다. 다만 아주 남는 장사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주 성과가 바로 실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통상 조선업체가 일감을 따낸 뒤 선주에게 배를 인도하기까지 2~3년가량 걸린다. 예상 수익 이하 수준에 수주하면 해당 기간 동안 오히려 손실을 보는 구조다. 선박을 수주한 뒤 최대 1년의 설계 기간은 실적에도 반영하지 않는다. 야드에서 작업을 시작한 뒤에야 수익으로 실적에 반영한다.

당장 지난해 출혈 경쟁한 여파로 올해 실적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올해 수주 대박도 결국 내년 이후에나 현실화할 전망이다.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3.7%, 대우조선해양은 99.64% 각각 감소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은 영업손실 71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익성도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최근엔 철강 가격이 오르는 추세다. 선박을 건조하는 데 쓰는 후판(두께 6㎜ 이상 두꺼운 철판) 가격 부담이 가중할 수 있다. 후판 값은 선박 건조비의 20%가량을 차지한다. 김현수 인하공업전문대 조선해양과 교수(대한조선학회장)는 “수주 소식에 가린 실속을 따져봐야 한다”며 “저가 수주 우려가 여전한 데다 조선업이 호황ㆍ불황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외형은 성장했지만, 핵심 기술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액화천연가스(LNG)선 같은 고부가가치선 한 척을 건조하면 프랑스 화물창 회사 GTT가 로열티만 100억원씩 가져가는 식이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할 경우 결국 다시 중국ㆍ브라질 등과 저가 수주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며 “최근 몇 년 새 지속한 산업 구조조정으로 위축한 조선 인력을 키우고 스마트ㆍ친환경 선박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조선 ‘빅3’의 화려한 수주에 가려 무너진 중소형 조선업체 등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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