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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편지⑦] 사망자 500여명, 이들을 또다시 외면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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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한겨레

30일(현지시각)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타이 매홍손주 매삼랩에서 미얀마 군부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미얀마 시민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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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여섯번째 편지를 보내고 며칠 안 돼 우려하는 사태가 터졌습니다. 지난 27일은 미얀마 국군의 날이었는데, 시민들은 이날을 ‘시민 저항의 날’로 선포하고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군부는 이날 쿠데타 이후 가장 강력하게 시민들을 공격해, 이번 주말 이틀간 16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한살 갓난아기와 15살 청소년이 희생됐고, 군경이 다친 시민을 타이어가 쌓인 불구덩이에 던졌다는 소식까지 들려옵니다.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기간 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이들의 희생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사흘 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정리하고 있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주검 사진과 사연을 보면서, 직업 기자도 아닌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는 한 사진에는 세 자녀가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시위 군중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던 간호학과 여학생은 구조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총격에 희생됐고, 젊은 의사는 유언장을 쓰고 시위에 나갔다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아들의 주검을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와 주검을 기증하겠다는 서약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20대 여성, 신원을 알 수 없는 주검의 사진을 올려 수소문하는 이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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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의 거리에 군부 반대 시위에 나선 한 청년이 서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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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민들레 같은 민초들의 넋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 미얀마 비평작가인 팃사 니가 단편작 ‘나비’에서 1988년 민주화 항쟁 당시 죽어간 시민들을 나비에 비유했던 것처럼 이들의 죽음도 한낱 나비처럼 잊혀지는 것일까요?

급증하는 희생자 집계를 보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국제사회는 어떤 이해관계에 얽매여 소극적인 규탄 성명에만 그치는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을 단순 교통사고에 비유했던 이와 광주 민주화항쟁 때 발포명령을 내리고도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 미얀마에서 죽어가는 시민들을 보면서도 이들 때문에 사업이 안 풀린다고 하는 한국 교민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에게 정의와 윤리적 가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묻고 싶어집니다. 더불어 나는 과연 얼마나 정의로웠는지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1997년 12월 대학생 시절 미얀마에 처음 여행 왔을 때가 떠오릅니다. 공항에 있던 군인들은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고, 길가에는 경찰들이 의심스런 눈으로 총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5년 뒤인 2002년 미얀마에 살러 와 여전히 낙후된 시설에 불평을 쏟아내던 시절, 서툰 미얀마어로 정치 문제를 얘기하면 미얀마 시민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본 뒤 ‘쉿’ 하며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경찰이 가장 무섭다”고 하던 기숙사 직원의 얘기가 이번 사태를 겪으며 어떤 의미였는지 새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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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폭력에 다치거나 숨진 미얀마 어린이와 학생들. 미얀마 시민단체 미얀마정치범협회(AAPP) 누리집 갈무리


2007년 ‘사프란 혁명’ 때 저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을 외면했습니다. 당시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제 과거의 모습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계속 저를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빚진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지금의 사태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데도 어제, 오늘 시민들은 각지에서 대오를 이뤄 반군부 구호를 외칩니다. 총탄을 막지 못하는 헬멧을 쓰고 양손에 새총과 화염병을 든 시위대는 모래포대 바리케이드 아래 겨우 몸을 숨기며 저항을 이어갑니다. 군부의 총격에 한명이 쓰러지고 또 한명이 쓰러집니다.

10여개의 소수민족 무장단체 중 5곳이 저항을 선언했습니다만 아직 작은 연대 수준입니다. 애초 내전 수준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아직 내부 협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정부군이 전투기로 공습해,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고 국경 탈출이 시작됐습니다. 오래갈 것 같은 지옥 같은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길 기도합니다. 유엔(UN) 등 외부의 개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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