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외교문서 33만여쪽 공개…한소 수교 비사 담겨
홍순영 2차관보 "한소수교·주변 4강 교차승인시 미군 철수가능"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결핵협회장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씰을 전달받고 있다.(국가기록원 제공)© News1 |
(서울=뉴스1) 박재우 기자 = 노태우 정부가 소련과 수교를 추진하던 당시 소련측에 여건이 가능해진다면 주한미군 철수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29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2090권(33만여쪽 분량)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와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1990년 10월 한·소 국교수립 당시 치열했던 외교전 비사(秘史)가 담겨있다.
당시 한국측은 1990년 연내 국교수립을 추진했고, 소련은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우리 외교 당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며 주한미군 철수 의사까지도 소련측에 타진한 것이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7 선언 뒤 소련과 무역사무소를 상호 교환하면서 소련과의 수교를 적극 추진했다.
7·7선언이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발표한 선언이다. 남북관계 개선, 북한과 미‧일 관계 개선에 협조 및 남한은 중‧소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내용 외 6가지가 담겨 있다.
그 과정에서 홍순영 외무부 전 제2차관보가 블라딜린 보로노쇼프 소련 극동 연구지(Far East Affairs) 편집장과 1989년 4월 27일 면담에서 "한·소 수교 및 주변 4강 국의 교차승인과 국제적 보장이 확보된다면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해당 발언은 소련측이 "한·소 수교시 주한미군이 철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냉전 구도 해체가 임박하던 시기에 소련과 수교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미군 차량이 주차돼 있다. 2020.3.2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홍 전 제2차관보는 김대중 정부 때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장관 등을 지냈고 1989년 제2차관보 시절에는 북방외교의 외무부 최고 실무책임자로 불가리아·폴란드 등과의 수교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88년 7·7선언으로 한국이 소련·중국 동구권과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이 미국·일본 등 국가와 관계개선 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고 천명했던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로선 89년 초에 헝가리와 수교가 되고 폴란드와의 수교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소련과의 수교는 속도가 더뎠다"고 설명했다.
이어 "89년 당시엔 소련과의 수교가 진전이 없었다"며 "그러니 7·7선언 분위기 속에서 교차승인된다면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에 했던 발언이라도 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8차에 걸쳐 총 3만여권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
이번에 공개된 1990년 외교문서는 한·소 수교, 한국 UN가입 추진, 노 전 대통령 방미, 한·소 정상회담, 한국-불가리·체코·동독·루마니아 수교 등 내용이 담겨있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jaewoopark@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