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제여행 건강증명서' [중국 외교부 위챗 스크린샷=연합뉴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각국이 '백신 여권'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백신 접종자들부터 이동과 여행을 가능하게 해 단절된 교역과 교류를 정상화하자는 취지에서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7일 유럽의회에 '디지털 녹색 증명서'를 발행해 역내에서 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다. FT에 따르면 이 증명서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거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게 발급된다. 또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한 경우도 이 증명을 받을 수 있다.
EU는 당초 '디지털 백신 여권 발급' 법안을 이달 유럽의회에 제출하고 3개월 내로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등에서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자 '녹색 증명서' 라는 명칭으로 발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백신을 맞지 않았더라도 음성 판정을 받거나 회복된 경우에도 증명서를 내주는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증명서가 '여권'은 아니지만, 회원국 간에 여행·이동 절차를 조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FT가 입수한 제안서 초안에 따르면 유럽의약청(EMA)이 승인한 백신을 접종하면 회원국들은 이를 받아들여 격리를 면제한다. 다만 러시아 '스푸트니크 V'나 중국의 '시노팜' 등 EMA의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한 백신을 접종한 경우에는 국가별로 자체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회원국들이 집행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 역외 국가와도 양자 간 협정을 맺고 격리 면제를 할 수 있다고 문서는 적시하고 있다.
일본도 백신 여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17일 교도통신과 니혼게이자이 등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 대한 인증서 발급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규제개혁담당상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국제사회의 요청이 있다면 접종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백신 여권을 도입하더라도 대상과 범위는 국제여행으로 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중국 외교부도 지난 9일 중국판 백신 여권인 ‘국제여행 건강증명서’를 채팅 애플리케이션(APP)인 위챗 미니프로그램을 통해 출시했다고 밝혔다. 증명서에는 핵산, 혈청 항체검사 결과와 백신 접종 현황 등의 정보가 들어가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1월부터 백신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도 지난 2월 말부터 ‘그린 패스’를 도입해 공항, 상업, 문화시설 등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다만 국제보건기구(WHO)는 백신 여권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접종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백신의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할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마이클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정한 이유로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백신 여권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일 '백신 여권'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신중히 결정하겠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도 검토하고 있고 과학적인 근거와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해 정책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블록체인 형태의 디지털 접종 증명서 발급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증명서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고 QR 체크인 형식으로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방대본은 지난 15일 "4월까지 종이증명서와 동일한 효력의 코로나19전자 예방접종 증명서를 개인 스마트폰에 암호화하여 발급ㆍ저장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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