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 낭만적인 직업으로 ‘천문학자’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천문학을 전공한 친구는 늘 자신은 ‘하늘의 문학’을 공부했다고 뽐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해도 맞는 말이고, 실제로 하늘에 걸린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은하수가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은 강물이든, 헤라클레스가 먹던 여신의 젖이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하늘 곳곳에 숨어 있으니, 친구의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손금과 하늘을 잇는 이야기에 운명을 싣는 문학은 매혹적이고 우주에서 오는 온갖 신호들을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과 팽창을 계산하는 과학으로 이야기가 바뀌어도 놀랍고 경이롭긴 마찬가지다. 가끔은 젠체하는 친구의 태도에 흥칫뿡을 날리기도 하지만, 늘 그의 공부가 존경스럽다.
하늘을 보면서 별을 헤고 시를 쓰는 일은 낭만적이다. 땅에 발을 대고, 빛과 전파를 잡는 망원경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과학과 수학의 힘을 빌려 달과 별의 운행과 우주의 역사를 알아내는 것도 위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로 나가서 직접 탐사에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람은 지구를 벗어나서 살 수 없다. 맨몸으로 나서면 어느 정도 견딜지 상상해보자. 갑작스러운 맹추위가 몰려올 때마다, 대만에서 영상의 날씨에도 동사하는 사람들 뉴스가 나온 것을 보면 섭씨 20도 아래서는 하룻밤도 버티기 어렵지 않을까? 섭씨 40도 부근으로 기온이 오르면 열사병에 쓰러지기 십상이니 우리가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온도의 범위는 10~20도를 넘지 못한다. 인간은 숨 쉬는 대기의 성분도 조금만 다르면 숨이 막히는 생물이라 대기가 없는 우주나 성분과 조성이 다른 대기를 가진 천체에서 맨몸으로 버틸 수 없다. 대기가 방사선을 막아주지 않으면, 우린 일찌감치 멸종했다. 인간이 망쳐버린 지구라고 해도 우리에겐 지구보다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더구나 달에, 혹은 화성에 집을 짓고 대규모 이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 필요할까? 가능할까? 달이든, 화성이든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망가졌다고 해도 지구를 고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우주로 나간다. <플라네테스>의 시간은 2074년. 달 기지엔 사람이 살고,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다. 달에서 태어난 루나리안. 그들은 선천적 저중력 장애가 있다. 중력이 작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골격은 빨리 자라는데 뼈, 근육, 심장 등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지구에 갈 수 없는 운명을 가졌다. 물론, 달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은 아니고 제한된 기지 정도. 화성까지도 기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담배 한대라도 몰래 피우려면 우주복 입고 월면차(달 표면을 이동하는 자동차) 끌고 나가야 하는 세상이다.
영화 <승리호>의 레퍼런스 중 하나였다는 이 만화의 중심은 데브리(우주 쓰레기) 회수선 DS-12호. 수명이 다한 위성과 우주 공간을 떠도는 잡다한 인공물들을 청소하는 우주선이다. 30년이 넘은 고물 우주선은 김태리를 꼭 닮은 괄괄한 여자 선장이 운전하고 하치와 유리가 주로 선외활동을 담당한다. 송중기가 딸을 찾아 승리호에 탄 것처럼 유리는 7년 전, 대기권 밖을 날아 타이에서 영국으로 가던 비행기 사고로 잃은 부인의 흔적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며 산다. 더 멀리, 우주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은 하치는 사표를 쓰고 목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가면, 돌아오는 것은 불확실한 길. 그 길을 떠나는 이유를 만화는 <구스코 부도리의 전설>(미야자와 겐지)을 빌려 설명한다. 구스코 부도리는 추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화산을 조정해서 기후를 변화시키려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만화에 흔히 나오는, 비장하지만 뻔한 설명. 나는 하치가 목성으로 간 이유를 사랑, 혹은 갈망으로 설명한 버전이 더 좋다.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지만 얻지 못하고, 그럼에도 인간은 그 갈망으로 말미암아 우주를 배회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마음에 드는 설명은, 이런 것이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것은 꿈을 좇았기 때문이다.
만화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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