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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에 기억 선물하다…"자서전 쓰며 지난 삶 돌아보는 시간, 치유력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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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인물포커스]꿈틀 박범준 편집장 "오늘도 공부, 치매 예방 도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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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 박범준 편집장/사진=이기범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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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유튜브…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어르신들을 위한 게 있을까요?”


평범한 어르신들의 자서전 <기억의책>을 제작해온 출판 전문 사회적기업 (주)꿈틀의 박범준 편집장은 “어르신을 위한 콘텐츠가 없다”고 말했다. 70~80대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매체 또한 드물다. 박 편집장은 “어르신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신다’는 말을 하면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박 편집장이 치매예방 학습지 <오늘도 공부>를 발간한 이유다. 꿈틀은 자서전 <기억의책>을 제작해왔다. 박 편집장은 “어르신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돌봄 공백’이 생기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며 “적적해서 보지도 않는 TV와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둘 다 켜놓는 집도 있다”고 했다.

<오늘도 공부>는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발간을 시작했다. 책은 일반 버전과 좀 더 큰 글씨로 구성된 큰 글씨판, 두 가지 버전으로 발행된다. 매일 필사를 진행하는 글쓰기와 색칠하기, 우리말 공부, 미로찾기, 가로세로 낱말풀이 등 지적활동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담았다. 박 편집장은 “예전에 어머니가 낱말풀이를 좋아하셨는데 요즘에는 구할 수 없다고 하셨다”며 “온라인에는 있겠지만 어르신들이 접근하기는 어렵다. <오늘도 공부>에는 그분들에 맞는 콘텐츠가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독자가 보내준 사연, 옛날 사연, 고향 이야기도 담겨 있다.

<오늘도 공부>에서는 좋은 글을 따라 쓰거나 일기를 직접 쓰게 한다. 직접 필사하는 것은 장점이 크다. 언어와 손의 움직임은 뇌의 고난도 활동이다. 박 편집장은 “매일 직접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습지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집중력이 생기고 근력이 붙는 것은 덤이다.

어르신들이 매일 쓰는 글을 꿈틀 직원이 확인한다. 절반은 카카오톡 사진전송으로, 절반은 전화로 확인한다. 매일 참여하면 개근상도 준다. <오늘도 공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비스는 담임교사처럼 담당자가 매일 구독자와 소통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학습이 보편화되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오늘도 공부를 통해 어르신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다. 제주 건입동의 도시재생센터를 시작으로 서울 성동구, 성북구 등 수도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성동구립 사근동 노인복지센터는 성동청년플랫폼과 함께 오늘도 공부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어르신 지원자들이 복지센터를 통해 치매 예방 일일 학습지 <오늘도 공부>를 구독하면 지역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방문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어르신들의 안부를 챙기고 학습을 지원한다. 박 편집장은 “지자체에서 어르신들 관련 교육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전하게 하기 어렵다”며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 중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고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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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 박범준 편집장/사진=이기범 머니투데이 기자


◇“모든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습니다”일반인 자서전 만드는 <기억의책>


‘꿈틀’은 평범한 사람의 자서전인 <기억의책>을 만든다. <기억의책>의 모토는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이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가 된다. <기억의책>은 지금까지 간단하게 자서전을 만드는 것을 포함해 900권가량 발행했다. <기억의책>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제주 4·3 사건 유가족이나 해녀 등 역사의 산증인의 자서전도 만들었다. 박 편집장은 “자서전 주인공은 대부분 70~80대”라며 “공통적으로 전쟁을 경험했고 고생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억의책>은 이들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담는다. 실제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박 편집장은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 자체가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며 “삶의 의미를 물었을 때 쉽게 답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말이나 글로 삶을 돌아보고 난 이후에는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거창하게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기억의책>을 만든 것은 아니다. 박 편집장이 <기억의책>을 만든 계기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박 편집장에게 ‘기성세대’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세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아버지였다. 항상 권위적이고 자신의 방식을 가족에게 강요했다. 한 심리학자가 남긴 ‘남자가 아버지와 화해하기 전까지는 어른이 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춘기 이후로 아버지와 편하게 이야기한 기억이 없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살아온 이야기만 들었다. 어린 시절 한 소년이 자라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야 이해됐다. 여전히 아버지와 생각은 다르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니 인생이 바뀌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가족이 편해지니 다른 사람과의 마찰도 쉽게 풀렸다. 박 편집장의 이런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의책> 제작 기간은 두 달 정도다. 사람에 따라 여섯 달이 걸리기도 한다. 전문 작가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내용을 글로 풀어쓴다. 판매용이 아니라 소량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 총 제작 비용이 220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박 편집장은 “우리 가족이 보관하고 기록하기 위한 자서전”이라며 “제작 과정이 표준화돼 있어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자서전을 직접 쓰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직접 제작하면 비용이 더 저렴해진다. 박 편집장은 자서전을 직접 쓰는 법 강의도 진행했다. 또 중·장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자서전이 20~30대에게도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꿈틀에도 젊은 세대의 자서전 의뢰가 들어온다. 박 편집장은 “내가 주인공인 책이 나온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최근 20~30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나’라는 인식이 커진 것 같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어떻게 인생을 설계할지와 관련된 에세이 형식의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박 편집장은 인생 약도를 그리듯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서전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을 멋있게 잘 쓰는 것보다 내 삶의 의미를 정하고 적는 게 중요하다”라며 “어디로 갈지 모를 때가 가장 두렵다. 어디로 갈지만 정하면 나의 이야기를 잘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박 편집장은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 자체가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며 “삶의 의미를 물었을 때 쉽게 답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말이나 글로 삶을 돌아보고 난 이후에는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홍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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