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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1980년 광주 닮은 미얀마…얼마나 많이 죽어야 유엔이 움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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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 ③

한겨레

28일 시위에 나갔다가 희생된 양곤서부대학생 니 니 아웅 텟. 천기홍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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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이었던 28일(현지시각) 미얀마 전역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 2차 총궐기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최소 18명이 숨졌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날 26명이 숨졌다는 글이 잇따르고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얼마 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유엔(UN) 사무소 앞에서 늦은 시각까지 피켓을 들고 서 있던 학생을 기억하시는 한국 독자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학생 역시 안타깝게도 이날 양곤 시위에서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학생이 썼던 피켓 내용을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How many dead body needed for UN to take action?”(유엔이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필요한가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날 대변인을 통해 “국제사회가 함께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미얀마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군부에 보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지만, 이 학생을 비롯해 미얀마 시민들이 숨지기 전에 실질적인 조처가 취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난 2월1일 미얀마 쿠데타가 발생하고 22일 1차 총파업 시위가 열렸습니다. 2021년 2월22일 시민불복종 운동을 국민들은 ‘22222항쟁’이라고 칭했습니다. 1988년 8월8일 8888항쟁을 상징적으로 빗대어 다섯 개의 숫자가 합해진 날을 특별히 기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곤에서의 주중 시위는 계속 평화롭게 이어졌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2월25일 해질 무렵, 양곤에서 느껴지는 경찰의 진압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거주지 밀집 지역으로 경찰 병력과 호송차량이 모여들고 주민들과의 대치를 무너뜨리고 진입하는 모습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됐습니다. 곧이어 탕, 탕, 탕…. 양곤에서 처음 울리는 총성, 동네는 순식간에 혼란과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소식을 통하니 군부에서 선출한 동 책임자를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 시위에 병력이 투입되어 공포탄을 쏜 것이라고 합니다.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양곤에서 울린 첫 총성이기에 쉽게 불안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튿날인 26일 오전 양곤, 평소처럼 시위를 위해 모여 있는 젊은이들 쪽으로 진압경찰들이 전진합니다. 앉아 있던 시민들은 설마 그들이 무력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경찰들이 군홧발로 시민들을 밟고 곤봉으로 내려쳤습니다. 시민들은 혼비백산하며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던 시민들은 경찰의 폭력에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항의라고 해봤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 다입니다. 그리고 영상에서 진압경찰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연이은 공포탄 소리에 새들도 놀라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오전부터 시내 곳곳에서 체포를 위한 추격전이 펼쳐지고 밤이 되면 국민들은 에스엔에스를 통해 그날의 울분을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전해진 반가운 소식, 초 모 툰(쩌모툰) 주유엔 미얀마 대사가 유엔 총회에서 전세계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쿠데타 과도정부를 부정하고 문민정부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개입과 제재를 요청하며 “국민이 주인이다. 우리의 저항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마무리하며 시민불복종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이 영상이 일제히 퍼져나가면서 지쳐 있던 시민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시민들은 대만·인도·인도네시아·타이(태국)·홍콩 등 주변 6개국 연합 “밀크티 연대(동맹)” 2차 총궐기에서 더 큰 소리를 내자는 다짐을 교환했습니다.

27일, 상황이 더 안 좋았습니다. 중부 만달레이 서북쪽으로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몽유와라는 곳에서 입에 담지 못할 잔혹한 진압 영상들이 소셜미디어로 퍼져나갔고 또 한명의 여성이 실탄 피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해지는 영상을 놓칠세라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잔혹한 진압이었습니다. 88년 항쟁 때 기록영화는 아닌지, 가짜뉴스는 아닌지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군경은 시위대 진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력을 동원했습니다. 학생처럼 꾸며 입은 사복경찰들도 쇠파이프를 들고 시위대를 쫓으며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습니다. 21세기 이 순간 비춰지는 영상에 몇 번씩 눈을 의심하며 떨리는 손으로 여기저기 살펴봅니다. 그리고 88항쟁을 겪었던 미얀마 지인 몇 분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분들도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합니다. 이 사태가 88년 항쟁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가서 더 걱정이라고 합니다.

저도 요 며칠 과거 항쟁들을 분석하며 궁금한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88년 어린 대학생이 희생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당시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선도하며 각계각층의 참여로 전국적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발생하는 시민불복종의 중심에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 88항쟁과 비슷한데, 그 결과가 예전처럼 비극으로 끝날지도 모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흐르는 침묵입니다. 그러고는 한결같이 조금 더 지켜보자는 대답뿐입니다.

88년 항쟁을 시사했던 ‘나비’라는 제목의 단편소설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나비들이 상가 판매대 위며, 인력거 위며, 길거리 여기저기 곳곳 떨어져 있었고 날이 갈수록 셀 수 없을 만큼의 나비들이 거리를 뒤덮었습니다.” 우연히 이 작가와 독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의 희생자를 나비로 표현했다는 말씀에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작가와 독대한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광주였기 때문입니다.

28일 아침, 눈을 뜨기 전 잠시 어제까지의 모든 상황이 악몽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악몽은 계속됐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잔혹한 진압이 어제보다 더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양곤에서는 23살 학생이 안면부 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교육자들은 교육청 앞에서 군경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이 중 여교사 한 분이 희생됐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젊은 청년이 총격에 희생되어 양곤만 3명, 남부 다웨이라는 해안도시에서 3명, 바고에서 2명, 만달레이에서 1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미얀마의 여러 지역에서 사망자 소식이 들리면서 악몽보다 처참한 현실에 분노가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가슴 아픈 영상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남부 해안도시에서 군경이 시민들을 향해 깡통 맞히기 놀이라도 하듯 소총을 발사하고, 동료 경찰들이 낄낄대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영상이었습니다. 신앙이 있어도 이들은 용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광주도 이랬을까요? 어제까지 함께 웃고 꿈을 꾸던 청년들이 여기저기 총알을 피해 다니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80년 광주와 88년 양곤의 참극이 30년이 훌쩍 지난 2021년 양곤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밤잠을 설쳤습니다.

26일 한국 국회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주의 회복과 구금자 석방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들었습니다. 하루빨리 국제사회의 도움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경제 제재 정도로 군부는 눈 깜짝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1974년부터 시작된 경제 제재는 미얀마를 최빈국으로 몰락하게 한 주요 원인이었고, 그 피해의 중심에 국민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얀마가 최빈국일 때도 모든 걸 영위하며 국민을 노예처럼 착취했습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께서 부디 함께 힘을 모아 국제사회가 나서서 미얀마를 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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