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발언 변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해마다 국내 반일 정서가 높아지는 3ㆍ1절에 대통령이 내놓는 기념사는 한ㆍ일 관계에서 큰 외교적 함의를 지닌다. 정부가 한ㆍ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가운데 발표될 문재인 대통령의 네번째 3ㆍ1절 기념사는 더 그렇다. 과거 3ㆍ1절과 광복절 등 주요 계기마다 나왔던 문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를 ‘기승전결’로 분석해봤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기조 변화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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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起) : “가해자가 ‘끝났다’ 안 돼” 강경 기조 시작
2017년 7월 출범한 위안부 합의 검토 TF는 약 5개월 간의 검증 끝에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2017년 12월 27일 당시 오태규 위안부TF 위원장이 검증 결과를 발표한 브리핑 현장.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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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시절부터 한ㆍ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등을 주장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2017년 광복절 축사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한ㆍ일 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직전인 7월 31일 이미 위안부 합의 검토 TF를 출범시킨 터였다. 그리고 12월 27일 TF는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 문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내용과 절차 모두 중대한 흠결이 있다”며 “해당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듬해인 2018년 3ㆍ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의 대일 비난 수위는 더 높아졌다. 위안부 문제를 ‘반인륜적 인권 범죄 행위’로 규정하며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TF 결과에도 불구하고 파기나 재협상은 않기로 정부 방침을 정한 뒤 합의의 핵심 요소인 ‘최종적 해결’은 정면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3.1절 기념사에 대해 당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극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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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즉시 반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경 드라이브는 계속 됐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기림의날 메시지에선 “(위안부 피해는)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깊이 반성할 때 비로소 해결될 문제”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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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承) : “다신 일본에 안 진다” 지소미아 종료 강행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로 보복했다. 2019년 7월 반도체 부품 소재 등의 한국 수출을 금지했고, 8월 수출 관리 우대 대상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8월 2일)를 소집해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며 강대강 대치를 예고했다.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아베 신조(오른쪽 두 번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지소미아 및 수출규제 문제와 관련 양측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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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갈등이 안보 사안으로 불붙자 미국이 급히 중재에 나섰다. 11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발효를 불과 여섯 시간 남겨놓고, 한국은 종료 결정을 유예하고 일본은 ‘현안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출 관리 정책 대화를 하는 데 합의했다. 12월에는 중국 청두에서 한ㆍ일ㆍ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임시 봉합이라 2020년 들어서도 특별한 상황 반전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기림의날 메시지에서 “정부는 할머니들이 ‘괜찮다’고 하실 때까지 해법을 찾을 것”이라며 피해자 중심주의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재확인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선 “(징용 관련)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최고의 법적 권위와 집행력을 가진다”고 밝혔다. “일본과 협의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도 했지만, 대법 판결의 ‘집행력’을 강조한 것은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까지 가능하다는 뜻으로 일본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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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轉) : “위안부 합의가 공식 합의” 태세 전환
일본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기류는 지난해 말부터 급변했다. 도쿄 올림픽을 북한 문제 진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 유화적 행보가 계속됐다. 사진은 2020년 11월 박지원 국정원장이 스가 일본 총리와의 면담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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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류 변화가 포착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11월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방일해 불과 사흘 간격으로 스가 총리를 만나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도쿄 올림픽을 북한 문제 진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유화적 행보였다.
하지만 올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양국 관계는 다시 고비를 맞았다. 판결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향해 유화적 메시지를 대거 내놨다.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했고, 줄곧 내용ㆍ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해 왔던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 합의였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또 “현금화 등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양국 간에 외교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이라며 기존과 달라진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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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結) : 올해 3ㆍ1절 대일 메시지는?
전문가들은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국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첫 발을 한국 정부 역시 떼야 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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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문 대통령이 이번 3ㆍ1절 기념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지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 특히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파기와 존중을 오가며 사실상 자기부정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결국 태도의 문제인데, 한국 정부가 한ㆍ일 관계 복원을 원한다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23일(현지)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연설에서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위안부의 비극은 보편적 인권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촉구하자,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는 “양국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비난을 자제할 것을 확인했다”며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반박했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야 보편적 인권 문제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일본은 문 대통령이 공식 합의로 인정한 뒤에도 한국 정부가 이런 연설을 하니 역시 한국은 믿을 수 없다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단 존중, 피해자 동의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일본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3중고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본과의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양국 간 협의부터 하자는 식의 태도보다는 우선 국내적 논의를 통해 자체적인 해법을 도출하고, 이를 일본에 제안하는 식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ㆍ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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