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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취재파일] '야성적 충동'이 지배하는 비트코인…화폐? 디지털 금? 넌 대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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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그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일찍이 왜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저서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쓴 개념입니다. 튤립 버블부터 시작해 대공황,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주택시장 버블 등 자산 거품을 초래하는 '비이성적 결정'의 이유에는 야성적 충동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요즘 이런 야성적 충동이 지배하고 있는 투자 대상이 바로 비트코인입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가격이 급등락하고 있는 비트코인 투자, 과연 어떤 대상으로 보고 야성적인 충동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미래의 화폐?



비트코인의 화폐로서의 역할 가능성에 낙관적 기대를 걸고 있는 쪽에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화폐가 중앙은행의 권력을 분산해 미래의 화폐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거래를 수행하는 데 매우 비효율적이다. 소비하는 에너지 양이 엄청나고, 종종 불법 금융행위에도 쓰이고 있다." (옐런 미 재무장관)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유럽 중앙은행은 비트코인을 사거나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 총재)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설립자)

"비트코인은 채권이나 주식처럼 이자나 배당을 제공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사고 있다." (루비니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


한마디로 비트코인 자체로는 가치를 보유하지 못한 자산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서 "비트코인은 태생적으로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이라서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가치가 없는 자산이라면 거래수단으로 쓰일 수 있어야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화폐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부루마블 게임에 쓰는 1만원 권을 물건을 사기 위해 낸다고 해서 받아주는 곳이 없는 것처럼 화폐가 되려면 거래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거래 상대방이 받고 싶지 않아도 받아야 하는 강제성을 띄어야 법정화폐가 되는데 그 핵심은 가격 안정성입니다. 자고 나면 가격이 달라지는 비트코인은 이런 안정성을 지금까지 가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가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인용한 인물들의 발언에서 잘 설명돼 다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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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완전히 익명으로 거래되는 제도권 밖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불법 거래 시장에서 활발히 활용되는 이유도 익명성에 있는데, 이 말은 이용자들이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가상통화거래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을 뿐더러 거래 과정에서 피해를 본 이용자가 있더라도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설사 불법으로 시세를 조정하거나 불법 단체와 거래하거나 유동성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아 피해를 봤어도 보호를 못 받는다는 거죠. 실제 암호화폐 중에 가장 디지털 화폐와 가깝게 평가받았던 '테더'와 암호화폐거래소가 최근 뉴욕주 검찰 수사에서 불법으로 손실을 은폐한 것이 드러나 그 수사 결과를 인정하고 뉴욕주 검찰에 벌금 206억 원을 내고 합의한 일이 있습니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면서 투자자를 속이고 거액을 가로챈 회사에 국내 투자자들이 700억 원이나 투자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테더는 코인 1개를 1달러에 연동해서 마치 안정적인 코인인 것처럼 발행했고, 많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살 때 테더를 연동해 사기도 했습니다.
▶미국 암호화폐 회사 믿었는데…'700억 먹튀' 수사 (2월 25일, SBS 8뉴스)

비트코인이 앞으로도 화폐로서 기능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더 큰 이유는 극심한 가격 변동성입니다. 1차 암호화폐 광풍이 불었던 2017년 초 900달러에서 그해 말 2만 달러로 오르더니, 2018년 말 3천 달러로 떨어졌다가 이후 지지부진한 시간이 이어진 뒤 다시 6만 달러를 육박하고, 이제 4만 5천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지난 며칠 동안은 6만 달러를 육박하면서 급등하다가 4만 5천 달러로 급락했습니다. 이런 롤러코스터도 없죠. 이렇게 변동성이 큰 자산이 교환가치인 화폐로 사용된 적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비유하자면 비트코인은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되는 골동품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암거래 시장이죠.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골동품이 진짜라고 믿고 그걸 나중에 누군가가 오른 가격이나 비슷한 가격에 사줄 것이란 믿음으로 구입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닥쳐도 물건을 팔았던 사람을 찾아 항의할 수 없는 그런 투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위험을 투자자 스스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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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요즘 '미래의 화폐'라는 주장보다 더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물 금처럼 인플레이션으로 달러 같은 돈의 가치가 떨어질 때 대응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써의 금은 가격에 그런 부분이 반영됩니다. 금의 전 세계 잔존량이 약 19만 톤쯤 되고, 연간 4천300톤을 생산하고 있는데 풀려 있는 금의 비중으로 보면 연간 생산되는 금의 비중이 전체의 1~3% 수준이라서 금값에 거의 영향을 주진 못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편입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 되고, 투자자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투자하는 것이라면 금값의 방향성과 비슷하기라도 해야겠죠. 하지만 금값은 최근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데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를 찍었다가 떨어진 것입니다. 4년 전 1차 광풍 때와 달리, 다른 암호화폐들의 가격이 비트코인과 달리 급등하지 않은 것만 봐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보고 투자하고 있다는 설명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비트코인은 야성적 충동을 지닌 개인의 투기적 거래가 공급이 제한된 상황과 만나서 가격이 급등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트코인의 총 채굴량이 2천100만 개인데 이미 88%는 시장에 풀렸고, 2040년에는 채굴을 종료한다는 '한정판 마케팅'이 희소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성적 충동이 지배해 활활 타고 있는 비트코인 시장에 기름을 부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입니다. 시장이 비트코인의 화폐로서의 '거래 기능'에 회의적이자 머스크는 테슬라를 비트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고, 비트코인 투자를 부추기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테슬라가 무려 15억 달러, 약 1조 6천억 원을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테슬라가 투자하니까 다른 기관 투자가들도 많은 금액을 투자했겠지 하고 오해할 수 있지만, 지난해 9월부터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매수한 총 금액이 110억 달러입니다.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전문기관 투자자 모두의 금액을 합친 규모라는 것을 감안하면 제조업체인 테슬라 혼자서 얼마나 많이 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테슬라 주가가 비트코인 가격에 연동돼 움직이는 이상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해 자산 규모 세계 8위가 되자 "가격이 비싸 보이긴 하다"고 한 발 뺐지만, 여전히 다른 인사들 가운데는 "10만 달러까지 간다"고 부추기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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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량이 한정돼 있고, 그 비용도 비싼 비트코인이 실제 테슬라를 구입하는 수단으로 사용될지도 의문점이 많지만, 8천500개가 넘는 암호화폐 중에 일론 머스크가 언급을 한 코인만 급등하고 나머지는 맥을 못 추는, 그러니까 머스크의 입만 쳐다보고 비트코인 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금'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 건 너무 앞서간 주장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미국 재무장관의 경고, 그냥 경고로 끝날까?



물론 비트코인 투자에 성공해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야성적 충동을 발휘해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앞으로 계속 가격이 오른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20% 가까이 급등락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앞서 비유한 대로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으로 수익을 올리는 분들이 존재하지만, 그 위험을 스스로 떠안고 하는 것이며 이런 특성으로 거래되는 것을 '미래 화폐'니 '디지털 금'이니 하면서 착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하고 싶습니다.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옐런 미 재무장관이 비트코인에 대해 벌써 3차례나 경고를 날리고 있다는 점이며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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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탁에 이용됐다."
"투기성 높은 자산이다."
"투자자들이 겪을 잠재적 손실에 매우 우려한다." (옐런 미 재무장관)


비트코인 급등락에 테슬라 주가가 연동되고 나스닥 주가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황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지, 4년 전 1차 암호화폐 광풍이 꺼진 이유가 중국 중앙은행을 시작으로 각국이 규제에 나섰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가만히 넘어갈 것인지, 닥쳐올 상황이 비트코인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암호화폐의 투기성이 문제라는 메시지를 담고 중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에 앞장서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 역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낮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더욱 '비트코인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 확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빅 쇼트'(Big Short)의 실제 인물이자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하고 부동산시장 붕괴에 베팅해 수십억 달러를 번 마이클 버리 사이온에셋매니지먼트 창업자가 최근 '카산드라'란 아이디를 쓰는 자신의 트위터에 흥미로운 글을 남겼습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실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풀린 돈 때문에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는데 코로나19로 인한 부양책으로 돈을 더 풀 수밖에 없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란 전망을 했고, 그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급락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과거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의 인플레이션을 언급하는 극단적인 비유를 했는데, 그의 발언 내용보다 그가 왜 이런 글을 남겼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과거 주택시장 붕괴를 앞두고 자신은 분명히 경고를 했었는데 사람들이 듣지 않고선 나중에 왜 경고를 안 했냐고 탓을 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경고했다는 기록을 분명히 남기기 위해 글을 남긴다"라고 썼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가를 찍는 광풍이 다시 몰아친 2021년 2월, 그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언은 정리해둘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정명원 기자(cooldud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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