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수원지방검찰청 관계자들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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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수원지검 수사를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가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이 검사까지 이 사건 주요 피의자들이 검찰 대신 공수처에서 수사받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아직 출범도 안 한 공수처를 방탄막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규원, 변호사 통해 “공수처로 이첩해달라” 수차례 요청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검사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으며 수사팀에 “사건을 빨리 공수처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이를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5조 2항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오는 4월에야 조직 구성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다. 법조인들은 “공수처장도 그때까지는 사건을 이첩받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자기 사건을 공수처로 넘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분간 수사를 안 받겠다는 ‘꼼수’”라고 했다.
이 검사가 공수처 이첩을 주장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사건이 공수처로 넘어가면 청와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잘 무마해줄 것이란 기대도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이 비서관은 김 전 차관 불법출금 당시 이 검사·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등과 긴밀하게 조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수원지검 수사팀(이정섭 형사3부장)은 이 비서관이 이 검사에게 ‘긴급 출금 요청을 해야 한다’고 전달한 당사자라는 진술과 정황도 파악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36기)로 변호사 시절 같은 법무법인에서 일해 사이가 가깝다. 이 검사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던 2019년 3월 22일 밤, 형사입건 상태가 아니었던 김 전 차관에 대해 피의자에 대해서만 가능한 긴급출국금지 처분을 했다. 이 과정에서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에 임의로 서울동부지검장의 대리인 자격을 기재하고 가짜 사건번호와 내사번호를 넣는 등 서류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성윤도 3차례 소환 불응하며 “공수처 이첩” 주장
2019년 안양지청에 외압을 가해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26일 세 번째 소환에 불응한 채 서면 진술서를 우편으로 수원지검에 제출했다. 그는 혐의 일체를 부인하면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자체를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전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이 자기가 속한 검찰 조직을 믿지 않고 아직 구성도 안 된 공수처로의 이첩을 주장한 것은 비상식적”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를 ‘출금 신청 서류 조작 의혹’으로 수사하려 하자 외압을 가해 중단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검장은 진술서에서 “그런 지휘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안양지청이 대검 반부패부 요구에 따라 수사보고서에 ‘(출금 서류상의 동부지검 ‘가짜’ 내사번호는) 동부지검장에 대한 사후 보고가 된 사실이 확인되어 더 이상의 (수사) 진행계획 없음' 문구가 들어갔다는 이 사건 공익 신고인 주장에 대해서도 이 지검장은 “안양지청에서 문구를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지검장은 “현재 시행 중인 공수처법은 검사가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이를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범죄를 인지한 경우는 물론 고발사건의 경우에도 수사사항이 구체화된 경우 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강제수사 권한 유무도 시비 우려가 있으므로 법집행기관으로서 법률적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원지검 수사팀이 이 지검장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공수처 이첩’을 내세운 것이다. 이 지검장 뿐만 아니라 이미 ‘수사 외압’으로 조사를 받은 일부 검사도 주변에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공수처는 4월쯤 수사조직이 갖춰질 전망이다. 현재는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 등 검사 2명, 검찰 파견 수사관 10명 등이 사건 수리와 이첩 등 기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건을 이첩받아도 조직이 정비되기까지 몇 달은 그냥 묵힐 수밖에 없다”며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사건의 특성상 법무부 출입국 공무원이나 외압 피해자인 안양지청 관계자 등에 대한 회유·협박, 피의자들끼리 말맞추기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법조계 “공수처 이첩 자체로 ‘봐주기”. 위헌론도 나와
한편, 검사 범죄를 의무적으로 이첩하도록 한 공수처법 25조 2항에 대해서는 위헌론도 제기되고 있다. 특정 직업의 범죄에 대해 다른 기관의 수사권을 일체 배제하고 이첩을 의무화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헌재 공보관을 지낸 배보윤 변호사는 “공수처 법제상으로도 검사보다 수사경력이 적은 공수처 검사들에 의해 수사를 받게 함으로써 기존 검찰 수사보다 불충분한 수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며 “이첩 자체로 ‘봐주기’가 될 수 있다” 고 했다.
공수처법 25조 2항이 검사 범죄를 강제 이첩하도록 한 것도 헌법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법 24조는 공수처장이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 사건 진행 정도나 공정성 논란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25조는 검사 범죄는 혐의를 발견한 경우 이첩하도록 하고 있어 김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에서처럼 피의자들이 공수처를 ‘도피처’ 로 삼을 수 있게 했다. 배 변호사는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 있는 다른 가능한 수단이 있음에도 헌법상 근거 없이 검찰의 수사권을 일체 배제해 ‘보충성의 원칙’ 에 반한다” 고 했다.
헌재는 지난달 28일 공수처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지만 당시에는 공수처검사의 영장 청구권 등에 대해서만 판단했고 ‘이첩’ 조항에 대한 판단은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당장 부작용이 나타난 ‘이첩 요구’ 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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