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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학폭 미투'의 슬픈 현실···"이미 졸업한 뒤라서 처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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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학교폭력 이미지. 사진 대전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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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를 찾은 대학생 A씨(23)는 상담만 받고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동급생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등 학교 폭력(학폭)에 시달렸다는 A씨가 가해자 처벌이 가능한지를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2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배구계를 시작으로 이른바 ‘학폭 미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법조계에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뒤늦은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학폭 미투’가 늘면서 학교를 졸업한 이후라도 학창 시절의 피해를 법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문의가 느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미 졸업을 했다면 학폭을 처벌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학폭과 형사처분은 다른 영역"



대표적인 학폭인 집단따돌림은 물리적 폭력이나 욕설이 없다면 형사처분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형법상 처벌 조항이 마땅치 않아서다. 그러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따돌림 역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 교육부 차원에서 학생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범주가 형사처분 범위보다 넓다.

교육청 감사관 출신의 한아름 변호사(법무법인 LF)는 “이른바 ‘왕따’를 당해 정신적인 피해를 보았다고 해도 형사처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학생이어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 수 있다”며 “졸업하기 전이라면 피해 시점과 상관없이 처분이 가능하지만, 이후에는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에서 학생에게 어떠한 조치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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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 유형 살펴보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교육부 '2020 학교폭력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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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부재·공소시효도 발목



A씨 사례처럼 수년 전 학폭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 물리적·정신적 피해가 심각하다고 해도 증거가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강성신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실제 폭행을 당했어도 성인이 된 이후까지 증거가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몇 년 전 피해를 당하였다는 진술만으로는 입증이 어렵다”고 했다.

현행법상 폭행·모욕죄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폭행이나 욕설 등이 있던 때로부터 5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고 해도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법조계에서 “졸업 이후엔 법적으로 학폭 피해를 구제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학교에서도, 법으로도 해결 안 되니



제도권을 통한 학교 폭력 피해 구제가 어렵다 보니 유명인에 대한 ‘사회적 처벌’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자배구의 이다영·이재영 자매를 시작으로 야구 등 스포츠계와 연예계 인사들까지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다. 배우 조병규는 뉴질랜드 유학 당시 학교폭력 의혹에 휩싸였고,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 수진에게 학교 폭력을 받은 피해자라는 주장도 20일 SNS를 통해 제기됐다.

중앙일보

신무철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총장이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배구연맹에서 열린 배구계 학교폭력 근절 및 예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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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피해 지원 단체인 푸른나무재단 관계자는 “10~20년 전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문의가 최근 들어 늘고 있다”며 “피해를 보았을 당시 해결하지 못해 오랜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했다. 이어 “시간이 오래 지나면 법적 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다. 유명인에 대한 폭로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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