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원 '연료비 연동제' 도입했지만, 전기요금이 한전 구매단가 상승폭 못따라가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국제유가 상승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수익이 또다시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 강세에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력시장가격은 오르는 반면, 소비자에게 이를 전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 체계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는데, 유가 상승속도가 빠르자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60.52달러를 기록했고, 브렌트유는 장중 한 때 65.52달러까지 올라 1년여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최근 유가 상승은 예상보다 빠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면서 올해 유가가 40달러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부는 보도자료에서 기관 전망치를 인용해 유가를 상반기 배럴당 44.8달러, 하반기 48달러 수준으로 봤다. 하지만 주요 산유국이 감산계획을 잘 이행하면서 유가는 올 초에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요금에 미칠 영향도 커졌다. 연료비 연동제는 저유가에서는 전기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강세를 띠면 요금 인상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력을 생산하려면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등의 연료가 필요한데 연료 가격 등락에 따라 전력 생산단가가 달라진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 생산·판매가격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전기요금 산정시 연료비 연동분을 3개월 단위로 반영하기로 했다. 직전 3개월 평균 연료비(실적 연료비)가 직전 1년 평균 연료비(기준 연료비)보다 높을 경우 그 차이만큼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유가 상승은 한전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오랜 숙원인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음에도 급등하는 유가로 속을 태울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도매가격인 전력시장가격(SMP)은 유가 인상 효과가 본격 반영되는 하반기 빠르게 오르겠지만, 한전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소매가격은 직전 분기 대비 1킬로와트시(kWh) 당 3원 이상 올리지 못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이 같이 제한하고, 필요시 정부의 요금조정을 유보할 수 있는 권한을 발동할 수 있도록 이중 안전장치를 뒀다. 현재 한전의 전력 소매판매가격은 1kWh당 약 120원이다.
유가는 그동안 한전의 영업이익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전이 최근 발표한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한전의 SMP는 2019년 1kWh당 90.74원에서 2020년 68.87원으로 급락했다. 유가는 WTI 기준 같은 기간 배럴당 60~70달러대에서 10~40달러대로 하락했다. 한전 영업이익 역시 2019년 1조3000억원 적자에서 2020년 3분기 누적 3조2000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유가 전망을 볼 때 한전은 올해까지 버틸 수 있다고 봤지만 실적악화 시점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최근 유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요금 산정 요인은 유가 외에도 LNG 가격, 환율 등 다양한 변수가 있다"며 "최근 유가가 LNG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5개월 가량 시차가 있고 환율은 내리고 있어 당장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은 낮다. 2분기 전기요금을 산정하는 다음달까지 유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가능성이 낮지만 필요시 유보권한 발동 등 소비자 보호조치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매시장과 무관하게 묶여 있던 소매시장 규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연료비 연동제 도입의 취지는 긍정적"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원료가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폭도 지금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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