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유죄' 취지 항소심 파기환송
"성범죄는 너무했다" vs "불법 촬영 자체가 성범죄" 여론 갈려
연평균 성장률 5% 레깅스, 이미 보편화돼
대법원 "자기 의사로 신체부위 드러내도 촬영죄 대상 될 수 있어"
최근 운동복 및 일상복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레깅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하반신에 착 달라붙는 옷인 레깅스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내면서다. 신축성과 보온성이 뛰어난 레깅스는 운동복은 물론 일상복으로도 쓰일 만큼 널리 확산됐는데 이를 촬영하는 것이 성범죄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는 레깅스 특정 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것은 충분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앞서 지난달 6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뒷모습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 A 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 씨는 1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특정 부위를 특별히 확대해 촬영하지 않았고, 이미 일상복이 된 레깅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은 옷이 몸에 밀착해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고, 같은 부위를 촬영했더라도 상황에 따라 수치심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성적 수치심 범위에 대해서는 수치심뿐만 아니라 분노와 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폭넓게 나타날 수 있으며, 피해 여성의 진술을 볼 때 수치심이 유발된 것으로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일상복 촬영이 범죄인가" vs "사건 본질은 몰카 범죄"
그러나 이같은 대법원 판단을 두고 여론은 엇갈렸다. 레깅스가 일상적으로 착용될 만큼 보편화된 옷이라면, 이를 촬영하는 것이 성범죄가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레깅스 불법 촬영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최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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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B(29) 씨는 "최근 공공장소나 대중교통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레깅스를 입은 여성들이 흔히 보이는 것 같다"며 "특정 신체부위를 확대하는 등 몰카를 찍었다면 범죄이지만, 단순히 어디서든 보이는 일상복을 촬영하는 것을 범죄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장인 C(32) 씨는 "(레깅스는) 트레이닝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트레이닝복을 촬영한다고 성범죄인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레깅스가 아닌 '불법 촬영'이 문제라는 반박이 나왔다. 대학생 D(25) 씨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신체 모습을 몰래 쳐다보거나 촬영하면 당연히 불쾌함과 수치심을 느낀다"라며 "사건의 본질은 엄연한 불법 촬영 성범죄에 관한 문제이지, 레깅스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반박했다.
30대 직장인 E 씨 또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신체 노출도 여부와는 상관 없이 불법 촬영 그 자체가 성범죄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수치심 유발 신체 부위,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 아냐"
레깅스 불법 촬영 문제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실제 레깅스 요가복 등 스포츠웨어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전체 패션 의류 품목 가운데 레깅스의 지난해 매출은 2.6% 성장해 7620억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
레깅스 시장은 연평균 약 5%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의류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지난 한해에도 성장한 제품으로 나타났다. 운동용 스포츠웨어를 넘어 일상복으로써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대법원은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도, 피해자는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착용하고 있는 의복의 종류나 노출도와는 상관없이 불법 촬영이 문제가 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란 특정한 신체 부분으로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며 "촬영의 맥락, 촬영의 결과물을 고려해 그와 같이 촬영을 하거나 촬영을 당했을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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