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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패딩에 흉기 숨길까 봐" 배달원 겉옷 벗기고 화물 승강기 타게 한 '갑질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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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일부 고급 아파트 입주민 간 갈등 격화

오토바이 탑승 금지·헬멧 착용 금지 등 갑질 사례 다양

배달업체 측, 일부 아파트 배달료 인상하기도

배달노조 "라이더 범죄자 취급하는 현대판 신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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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배달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세운 뒤 잠시 목을 축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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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배달원들과 고급 아파트 입주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일부 배달원의 경우 패딩 안에 흉기를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옷을 벗은 상황도 있었다. 또 다른 배달원은 짐을 싣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배달 업체는 갑질 논란이 불거진 아파트에 대해 배달료를 인상해 이른바 '고급 아파트 배달원 갑질'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배달노동자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1일 낸 입장문에서 "지난달부터 사진과 동영상, 배달원이 모인 오픈 카카오톡 대화방 등을 통해 (갑질) 제보를 받았다"며 "그 결과 서울·부산·인천·광주 등에서 갑질이 가장 심한 총 103곳 아파트 명단을 추렸다"고 밝혔다.


배달원들의 제보에 따르면, 이같은 갑질은 주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주민들에게서 나왔다. 갑질 사례 또한 아파트 단지 내 오토바이 이용 금지, 헬멧 등 착용 금지, 화물용 엘리베이터 이용 강제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배달원은 넓은 단지 내에서 오토바이 출입이 금지돼, 먼 거리를 걸어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토바이 출입을 못하게 해서 보통의 배달지보다 배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며 "굉장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출입 시 겉옷, 우비 등을 벗게 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일부 배달원들이 "왜 그래야 하느냐"며 항의하자, 입주민 측에서는 "패딩 안에 흉기를 숨길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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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승강기를 이용하게 하거나 오토바이 지상 진입을 막은 아파트들. / 사진=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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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위압감을 준다는 이유로 헬멧 착용을 금지하는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승객용이 아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출입하게 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배달원들은 갑질이 심한 아파트에 대해 배달료를 인상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한 배달대행업체가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 단지에 보낸 배달료 인상 공지문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공지문에서 해당 배달대행업체는 "배송료 2000원을 추가할 예정"이라며 "해당 아파트 경비업체가 단지 내로 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배달 기사에게 신분증 요구와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해 기사들이 배송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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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배달대행업체는 일부 갑질 아파트에 대해 배달료를 인상하겠다는 공지문을 보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같은 업체 측 결정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갑질하는 아파트에는 아예 배달을 금지해야 한다", "더 인상하라"며 옹호하고 나선 반면, 일각에서는 "특정 고객만 차별 대우를 해선 안 된다"며 반박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배달원 노조는 갑질아파트 문제에 대한 개선 및 정책권고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배달노조)는 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갑질 아파트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배달노조는 이날 "배달라이더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하찮은 노동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은 인권침해는 고급아파트와 고급 빌딩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높이 솟은 아파트와 빌딩이 만들어낸 현대판 신분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라이더 인권을 무시하는 요구를 하지 않고 도보 배달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배달라이더의 인권을 보장하고, 라이더를 무시하는 갑질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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