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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강제성 입증 사료에 하버드대 교수 “‘강제모집 증명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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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4일 육군성 위안부 징집 관련 자료에

“강제동원 증명 않고 되레 체계화된 시스템 입증”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징집 및 강제모집의 형태로 운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는 “논문 그대로 봐달라”고만 밝혔다.

램자이어 교수는 우리 정부에서 ‘위안소 제도의 강제성’을 뒷받침한다고 분류한 사료에 대해서도 “실제 강제성을 입증하는 자료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2일 램자이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전시 매춘체제와 같았다는 논문에 대해 입장을 재확인해달라는 헤럴드경제의 문의에 “논문 그대로 봐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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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흉상[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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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는 오는 3월 출간 예정인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제 65권에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신문에 공개된 논문 요약본에 따르면 그는 논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성노예 피해자가 아닌 일본군과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맺은 계약관계라고 묘사했다.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에 헤럴드경제는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대표적 근거사료로 알려진 육군성의 ‘일본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1938년 3월 4일자 자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육군성의 일본군 위안소 종업부 관련 사료는 징집업자가 군위안부를 징집하는 방법이 유괴와 비슷해 당국에서 연계를 밀접하게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은 해당 문서가 오히려 통상적인 군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라는 걸 증명하는 자료라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징집업자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육군성이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묵인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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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


램자이어 교수는 이 문서에 대해 일본 보수세력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실제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고노 담화 당시 일본에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 16명 중 일본 ‘군’의 사기 혹은 강요에 의해 위안부가 됐다는 진술을 한 사람이 14명이다. 램자이어 교수는 이들의 진술 신빙성이 모두 떨어진다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헤럴드경제의 문의에는 답하지 않았다.

램자이어 교수는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일부 다른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술이 변화해왔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2016년 ‘위안부와 교수들’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도 위안소 제도의 운영방식, 임금체계, 병원운영 실태 등을 고려하면 위안부는 매춘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 위안소 제도 그 자체가 아닌 징집과정에서 업자들의 사기 등에 의한 피해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사라 소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의 책 ‘위안부’(Comfort Women)와 역사학자 이쿠히토 하타, 키스 하워드 런던대 교수를 인용하기도 했다.

사라 소 교수는 위안부 피해의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의 가부장 문화로 꼽아 한국 학계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의 가부장문화가 저소득층 어린 여성들을 인신매매로 내몰았다는 지적은 위안소제의 핵심인 일본 제국주의의 폐해를 희석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램자이어 교수는 친일학자로 분류되며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일본 미야자기현에서 보냈다. 전공은 일본법이며 일본 법과 경제 등에 대해 가르친다. 지난 2018년에는 미국 내 일본학 발전과 일본 사회·문화 이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인 욱일중수장을 받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은 1993년 일본 위안소 제도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고노담화와 배치되는 주장이다. 고노 담화 당시 일본 고노 요헤이 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시 요시미 요시아키 츄오대 교수는 ‘육군성 위안부 징집관련 공문’뿐만 아니라 위안소 제도의 존재와 강제성을 시사하는 일본 방위성 내부 자료를 대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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