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1일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데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이 전 보고관은 이날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얀마가 소수민족 학살을 일으킨 지역에 ‘묻지 마’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 미얀마 군부로 한국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면서 “투자 유치를 위해 미얀마 정부의 인권탄압에 눈감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보고관은 “군부가 집권한 지난 50년간 군부의 주머니는 두터워졌지만, 국민의 삶은 어려워졌다”면서 “2015년 문민 정부로 이양한 지 5년여만에 이렇게 쿠데타가 일어나면 민간인들의 삶이 더 낙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더 늦기 전에 미얀마 군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보고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표단을 미얀마에 빨리 파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새벽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을 구금했다. 군부는 권력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인 이 전 보고관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인권이사회의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을 맡았다. 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으나, 2017년 7월 마지막 방문 후 미얀마 정부에 입국을 거부당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 군부가 지금 쿠데타를 단행한 이유는.
“쿠데타 조짐이 생긴지는 조금 됐다. 군부는 지난해 11월 치른 총선이 부정 선거라면서 불복해왔고, 지난 며칠간 장갑차나 탱크들이 미얀마 양곤 시내를 활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부가 상황을 조금 지켜보겠다고 했는데, 오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65세가 되는 올해 6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점인데 그의 퇴임 후 군부가 그동안 축적한 부와 권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과 다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이 쿠데타를 일으킬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미얀마와 전화가 연결됐는데, 지금은 안 된다. 통신, 인터넷이 끊기고 도로도 폐쇄됐다. 코로나19 시기니 사람들이 나가서 집회를 할 수도 없다.”
- 집권 2기를 맞은 문민정부가 위기에 처했다.
“2015년 군이 아웅산 수지 고문이 이끄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민정을 이양하면서 미얀마 정치가 발돋움했다. 하지만 수지 고문도 집권 후에는 민주화 약속을 저버렸다. 수지 집권하에 정치범들이 더 늘었고, 정권에 비판적인 학생들도 구금됐다. 소수민족과 언론 탄압도 심했다. 그럼에도 군 쿠데타로 미얀마 민주주의는 문민정부 때보다 더 퇴보할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50여년 장기 집권 동안 풍부한 천연자원을 이용해 주머니를 두텁게 채워왔지만, 국민 삶은 더 어려워졌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민간인들의 삶이 더 낙후될 것이다.”
- 쿠데타가 소수민족에게 미칠 영향은.
“아웅산 수지 집권하에도 군부는 로향야나 라카인족 등 소수민족들에게 인권유린, 전쟁범죄를 하고 있었다. 최근 군부가 라카인족을 무차별 감금 사살하고, 민간인 집을 폭격했다. 군부가 집권하면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 더 커질 것이다.”
- 국제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사실 미얀마 민주주의가 후퇴한 데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책임이 크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 학살을 일으킨 곳에 ‘묻지마’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미얀마 군부로 한국 자금이 대거 흘러들어갔다. 문민정부인 아웅산 수지 정부도 소수민족 인권을 탄압하는 등 독단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투자 유치를 위해 눈감은 것이다.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제역할을 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가 미얀마 쿠데타 안건을 회부하고, 대표단을 미얀마에 빨리 파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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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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